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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운드 |토마스 빈터베르그

그렇지만, 춤을 추자.

by 글너머

나는 술을 좋아한다. 많이 마시진 못 해도 매일 마셔야 한다.

매일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정말 끊어야 된다고 하지만 그게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난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을 보며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내 마음을 알아 준 것만 같아서 최근

그 어떤 영화보다 조금 더 깊이 이입해서 봤다.

네 명의 남자들은 무료하고 매우 별 볼 일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한 선생님들이다.

삶의 목표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옆에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사람들 또한 왠지 없는 것만 같다.

가족이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특히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그 부모님에게서마저도 수업을 하는 것에 의욕이 없는 것 같다며 질타를 받는 마르틴의 삶은 보기만 해도 온 몸이 땅 속으로 꺼지는 것만 같이 우울하다.

마르틴에겐 그 우울함과 권태로움, 지루함을 지워보려는 의욕조차 없어보인다.

니콜라이의 생일파티를 위해 모였을 때도 마르틴은 역시 다음 날 중요한 일정이 있다며 술을 입에 대지 않았지만 그런 마르틴을 보다 못한 세 친구들이 그를 조금씩 어르기 시작하고 그들의 인생에 그렇게

술이 들어왔다.

세계의 유명인사들 또한 애주가였다며 적당한 1-2잔의 술은 사람에게 좋다는 명분으로 네명의 남자들은 자기들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일명 '알코올 농도 0.05% 유지해보기'. 단 딱 오후 8시 전까지.

보통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쯤 마시는 술이 아니라 그들은 일어나자마자 술로 하루를 깨웠다.

마르틴은 술을 마시고 출근하니 자신감도 생기고 그런 자신감이 의욕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런 의욕은

수업하는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점점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그의 살 앞에서 마르틴은 '술'이라는 것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사실 술이라고 하면 당연히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영화의 결말이 있겠지만 일단 그 결말 이전에 난 그들이 술을 '마셔야만 했던' 이유에 계속 마음이 쓰였다. 나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술을 먹지 않았을 때, 즉 온전히 내 자신일 때 내 자신이 싫은 사람은 술에 더 기대기 쉽다.

술을 마시면 좀 더 나 자신이 생생해짐을 느끼니까, 나 이외의 다른 것들을 조금은 덜 의식할 수 있으니까, 술을 마셨을 때의 '나'로 세상을 조금은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영국에서 살때 꽤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우울하고 공허해서 시덥잖은 관계에 불필요하게 마음을 많이 쓰고 그런 나를 보며 점점 더 텅 비어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허함을 견딜 수 없어 결국엔 또 일시적으로 마음을 메웠던 그 때.

그럴 때 난 누군가를 만날 때 마다, 정말 매 순간마다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조금은 해방감이 들었다.

좀 더 덜 부끄럽고, 좀 더 스스럼 없이 누군가를 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다음날 술이 깨면 그 날의 나를 봤던 상대방에게 '술 취해서 그랬던거야' 라는 속편한 핑계거리도 이미 마련되어 있었기에 술 마시는 건 언제나 나에게 yes 였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예전엔 더 심했다.

그래서 난 이 네 남자들(마르틴,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의 음주에 마음이 더 갈 수 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응원하기도 했고.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술 마시면 안돼!' 라는 뻔한 얘기는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어느 정도의 술은 조금은 팍팍하고 텁텁한 삶 속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회적 시선을 생각하지 않아본다면,

페테르가 한 번의 실패 후 또 다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너무 긴장한 학생에게 낮술을 건네주는 그 장면을 볼 때 술과 긴장해서 우황청심환 먹는 것의 효과가 비슷하다면 술은 왜 안되는거지? 라는 생각도 했고.

영화에선 과한 음주를 해서 네명의 남자들이 엉망진창이 되는 순간들이 후반부에 펼쳐지는데, 사실 이 부분에서 조금 갸우뚱 하긴 했다.

극의 흐름이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던게 과한 음주의 부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갑자기 네 남자의 삶의 어두운 부분을 끌어다 쓰는 것 같았달까.마르틴의 경우에도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점점 부부관계도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한 번의 과한 음주 이후 아내가 갑자기 바람핀 사실을 인정한 부분이라던가.(물론 그 전에도 마르틴이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과한 음주로 비롯되어 그의 삶 안에 침습해있던 우울감에 잠식 된 톰뮈의 자살.

장례식을 끝마치고 비탄에 빠져있던 마르틴, 니콜라이, 페테르가 술을 홀짝이던 펍 앞으로 그들이 가르쳤던 학생들이 졸업식을 끝마치고 환호하며 그들을 지나쳐간다.

젊음과 청춘으로 가득한 그 광경 속에 그들은 학생들의 손에 이끌려 그 행진에 합류하며 술을 함께 마신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비극과 희극은 끝없이 펼쳐진다. 젊음의 열기로 활활 타오르는 그들 또한 세월이 지나면 네 남자들과 같이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공허함과 만날테다.

계속 되는 이 삶 속의 '어나더 라운드' 속에서 결국은 계속해서 찾아올 슬픔을 피할 수 없다면 또 언젠가

찾아올 기쁨을 기다리며 미친듯이 춤 추고 몸을 던져도 좋다.

마르틴은 영화 중간 중간 춤을 춰보라는 친구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지 않지만 마지막 영화의

장면은 그의 춤으로 마무리된다.


이제 그는 '어나더 라운드'를 즐길 준비가 된 것이다. 가끔 슬플 때면 술도 가끔은 홀짝이고 춤도 춰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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