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는 뗄 수 없는 것, 그래서 아름답고.
핀터레스트며 인스타그램에 퍼펙트 데이즈 얘기들로 가득하던 날들이 있었다.
물론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보다 더.
이상한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나는 사람들이 열광할 땐 부러 보지 않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넷플릭스에 영화가 떴길래 냉큼 영화를 선택했다. 가히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형태에 가까운 것이었다.
화장실 청소부를 직업으로 하는 히라야마는 매일 새벽 동네 이웃 할머니의 비질 소리를 알람으로 깬다.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아침으로, 출근 길엔 요즘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길을 나선다.
남들에겐 '대충 해도 되는 구역'까지 꼼꼼히 청소하는 히라야마는 일을 하는 동안은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지고 임하고 점심시간 공원에 올라가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 후 일이 끝나면 공중목욕탕으로 가 목욕을
한다. 목욕 후, 매일 들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독서를 한 후 잠에 드는,
그의 단조롭고도 소박한 일상. 아날로그적인 낭만과 함께.
그의 하루를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밥알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야무지게 식사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히라야마는 마치 철저하게 계획된 듯이 같은 하루의 일상 안에서도 하루하루마다 다른 그 날만의
변주에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기분에 따라 음악을 고르는 것도, 조금씩 달라지는 날씨도,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는 출근길의 광경도,
매일 저녁을 먹으러 가는 식당에 사람이 많은 날이면 앉는 자리가 달라지는 것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패터슨> 이 떠오른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같은 것 같지만 조금 만 더 자세히 바라보면 조금씩 다른 하루들의 묘사가.
하지만 그런 변주곡들중에서도 제일 그의 하루를 이지럽게 하는 것은 바로 그가 만나는,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직장 동료부터 직장 동료의 여자친구, 주말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이자카야에서의 주인,
불시에 방문한 조카, 심지어 실제로 본 적은 없어도 한 켠의 화장실에 쪽지로 오목을 하는 누군가까지.
각자의 삶 속에서 본인들만의 빛을 뿜어내는 그들과 마주하면 별 다른 대화가 없어도 그는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그가 매일 사진을 찍는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그는 사이사이 삶 속에 비치는 빛에 미소짓는 것만 같다.
그러나 히라야마를 비롯해 우리는 알고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진다는 것.
빛을 마주하면 그림자도 마주해야 한다. 반짝반짝 빛이 났던 조카와의 하루였지만 히라야마는 조카를 돌려보내기 위해 그 간 연락을 끊었던 여동생에게 연락하고 히라야마의 가족과는 아예 동 떨어진 방식으로 살고 있는 히라야마는 여동생을 만난 후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잃어야 했던 가족들과의 시간들을 인지 한듯 여동생과 조카가 떠난 후 눈물 짓는다.
히라야마의 그림자 뿐 아니라, 매일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던 이자카야의 주인에게도 그림자는 존재했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와 그녀의 전남편의 재회. 눈물짓는 그녀를 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낀 히라야마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왠지 모를 감정에 원랜 하지 않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핀다.
주인의 남편은 히라야마를 공원에서 마주치고 그 또한 담담히 그의 그림자를 고백한다.
암이 재발 돼 전이 되었다고. 아직도 삶에 모르는 것이 많은데 아쉽다면서.
누군가에겐 이 영화가 지루할 수도 있다.
업앤다운이 없는 스토리에 거의 같다시피한 그의 일상 속 작게 흐르는 변주곡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쳇바퀴 같이 돌아가는 일상이 누군가에겐 지루할 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의 행복을 열심히 실천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언뜻 찾아오는 그림자에 눈물짓는게 우리라는 것도.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울려퍼지는 feeling good과 함께 화면에 가득 잡히는 그의 눈물로 젖은 웃음은 마음을 '쿵'하고 울린다.
그림자가 비쳐드는 삶일지언정, 그래도 흘러가는 삶 속에 'Feeling good'을 외치며 억지로라도 웃음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Perfect days는 있다. 있어야 하고 있을거니까.
*조금 아쉬웠던 건 그가 꽤 여유로운 환경 속의 인물이었다가 탈출 했음을 보여줬던 대목이다. 그의 여동생은 기사까지 대동해 딸을 데리러 왔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 '선택할 수 있는 자의 여유'
로부터 비롯된 점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았단 건 아쉬웠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