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만하라고 했다.
발렌틴은 1부터 10까지 모든게 나와 맞지 않았다.
난 일찍 일어났고 걔는 늦게 일어났으며 난 항상 청소하는 스타일이면 발렌틴은 몰아서 한꺼번에 청소를 했고
난 식료품을 먹을 만큼만, 발렌틴은 대량으로 사놓곤 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일을 갔다오면 돼지우리 처럼 변해있는 우리 방을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도 뭐 엄청 깔끔하고 그런 건 아니라 웬만하면 참겠지만 적어도 정리가 되어 있었으면 했는데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 먹다 남은 그릇들과 컵들이 여기저기에 있는 걸 보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하루는 내가 안 치우면 얼마나 안치워져 있는 지 보자 하고 가만히 놔둬봤는데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한꺼번에 몰아서 치우는 스타일이었던 그는 얼마나 이 방이 지저분해지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방이 얼마나 더러운지에 관해 자기만의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만큼 더러워졌다 싶을 때
청소했다. 짜증났던 건 또 그 청소가 너무 완벽해서 짜증났다.
아니 이렇게 청소를 잘하면 좀 평소에 조금씩 조금씩 하면 되는 거 아냐?!
더 큰 문제는 내가 문자로 '제발 나 일 갔다 오면 방 더러운거 보지 않게만 해줘' 라고 몇번을 보내놔도
알았다고 해놓곤 정말 단 한번도 청소 되어 있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하지 못했다는 변명과 함께.
그 변명도 한번 정도 해야 먹히지 계속 똑같은 이유로 하지 않는 건 나에 대한 무시라고 밖에
생각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우린 어느 포인트 이후 딱 미치지 않을 만큼만 싸웠다.
미친 듯이 싸웠다가, 다시 화해하고 꽁냥꽁냥. 또 막 싸웠다가 또 화해하고 꽁냥꽁냥.
그는 같이 살때의 그런 문제들만 빼면 더 없이 상냥했는데 이건 내가 고칠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모를까 그때는 더 어떻게 상대방을 달래고 설득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막무가내로 화내기만 했고 이제 발렌틴 또한 지지 않았으니까.
혹자는 걔네 집에서 그렇게 많이 지냈으면서 더러운 걸 몰랐나 싶을 수도 있는데
정말 웃긴게 그때는 어쨌건 '걔'의 집에 간거였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어쨌건 걔의 영역이었고 나의 공간은 아니었으니까.
왜 같이 살게 되면 그의 습성이 '우리'의 공간에 영향을 끼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니다, 내가 그걸 미리 생각했다면 난 연애를 몇번은 해본 사람이었겠지.
처음이라 겪는 시행착오 였지만 그 시행착오는 그때의 나에게 너무 고된 것이었다.
나에게 항상 좋은 것만 해주고 싶어하는 발렌틴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버텼다.
그러나, 좋은 것보다 나쁜 게 항상 더 크게 다가오는 법.
나의 스트레스는 Max에 가까워져 오고 있었으며 매번 고쳐지지 않는 그를 보고 실망하는 것도 지쳐버리는
시점이 왔고 난 거의 매일을 울다시피 했다.
발렌틴은 이제 나의 그런 모습을 신경쓰지 않았고 이해하려는 요만큼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게 보여서 더 속상했는지 모른다.
매번 울면서 스트레스 받아하고 굳은 표정으로 일하는 나에게 동료들은 헤어지라고 몇번을 조언하곤 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내가 힘든 걸 안쓰러워 했으며 헤어지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예 헤어지는 게 아니어도 지금 너희 둘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지금 둘이 너무 편한거야.'
'걔가 널 너무 잘 아네. 너가 자기랑 못 헤어지는 걸 아는거야. 그러니까 이제 신경도 안 쓰는거지.
아니 왜 안헤어져? 왜 널 힘들게 하는 사람을 계속 만나는거야?'
다 안다. 나라고 모르겠냐고. 물론 그들의 관점은 발렌틴을 더 야속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공헌(?)
했지만 헤어지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것때문에 우리 헤어져야 돼 안녕. 으로 헤어짐이 성사 될 사이였다면,
우리 둘은 진작에 헤어지고도 남았겠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오로지 당사자들만 알고 있는 관계가 연인이고 발렌틴은 나의 연인이었다.
물론 나도 몇백번 헤어짐을 생각했지만 우리 둘은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아니 헤어지지 못할 거라는
묘한 믿음이 나에게 있었고 그 기간은 나에게 단지 고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살게 되면서 겪는 고비 치고는 좀 셌지만 이건 언젠간 겪어야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속상했다. 예전 같으면 우리 둘 사이의 문제 해결을 위해 걔도 자세 딱 잡고 내 얘기를 들어줬을텐데
이제 발렌틴은 그러지 않았다. '또 얘기하자고?' 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나의 제스처를 무시했다.
나만 유난 떠는 애가 되어갔고 그때의 발렌틴은 나빴다.
그런 수모를 겪어보니 아, 내가 얘 없어도 혼자 다닐 수 있단 걸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bournemouth 쪽에 어학 연수를 와 있는 동기를 보러 발렌틴과 사귄 이후
혼자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갔다오고 나서도 내가 기대했던 그가 날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변화는 없었다.
이제 관계의 추가 점점 발렌틴으로 기울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괜히 불안해지던 시기.
그러나 난 아직 그와 헤어질 준비조차 할 수 없었고 그때의 나는 자주 상처 받고 아팠다.
다정한 그와 냉정한 그를 매번 마주하게 되는 나는 하루에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수십번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