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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너머 Jul 31. 2023

컨텐츠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DP를 보고

영화광인 나는 훌륭한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가 끝난 후 따라오는 여운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서사의 완결성이나 촘촘함은 웬만하고서야 책을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없지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눈으로 전달되는 이야기, 텍스트화 할 수 없는 것의 전달. 

그렇지만 영화의 끝자락에 가서는 여운과 함께 동시에 찾아오게 되는 큰 피로감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러닝타임 내내 난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며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를

보게 되면 피로감은 2배가 된다. 내 정신적 에너지도 온통 소모되므로.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그 피로감이 부담스러워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영화를 비롯한 컨텐츠를 소비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텐츠는 절대 포기하게 될 수 없는 짝사랑 같은 걸로

'내가 너무 힘드니까 너무 빠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도 딱 한번만이라도 눈을 돌리면 어쩔 수 없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그런 것. 

에너지 소모가 싫어서 짧고 비교적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도 영화 or 시리즈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있는 이야기를 소비하고 싶다는 갈증의 해소를 확실하게 도와준다. 

'그래, 내가 이래서 영화 보지. 이 여운을 느끼려고.' 


이런 나로서는 컨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세계가 반갑다. 수많은 OTT들이 말 안해도 떠먹여주려고

대기타고(?) 있으니 나야 완전 땡큐지. 안타깝게도 영국의 OTT는 한국의 티빙이나 왓챠만큼 다양하지 않아서

어쩔땐 컨텐츠때문에라도 한국 가고 싶어질 정도다. 물론 주변에선 VPN 써보라고는 하는데 난 아직 그건

괜히 무서워서 못쓰겠다. 

어쨌건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창작자들의 다양한 시도 또한 

플랫폼들의(Netflix 같은) 서포트를 통해 창작물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고 그 결과 소비자의 문화적 소양도 

한층 고양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도 인터뷰에서 초등학생때 무시무시한 외화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감각을 의도치 않게

익혔다고 하는데 이도 결과적으로 그런 경험이 그의 개인적 외연을 넓혀주는데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그 컨텐츠를 소화시키느냐는 자기 몫이겠지만 가치있는 창작물들의 공급은 그래서 중요하다.

혹시 모르지! 봉준호 영화감독 같은 인물들이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갈고 닦고 있는지. 


책 데미안에서 말했던 것처럼 각자는 각자의 알을 깨고 나오며, 알을 깨고 나왔을 때부터 비로소

'자신'의 세계가 생성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누구와도 같지 않다. 단 1g이라도

다르면 다른거다. 그걸 고려해본다면 창작자의 공급물이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그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고, 이와 별개로 그 가치있는 영향력을 퍼뜨리는 것은 중요하다. 

누구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닿느냐에 초점이 있다기보다 그 사실 자체가 대의적으로 봤을 때 

얼마나 소중한지를. 

컨텐츠/이야기의 형태를 띈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 퍼지고 공명하는 것 자체가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짜릿하다.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동시에 그 힘으로 얼마나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어쩔때는 경이롭다. 

그런 견지에서 최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이 거둔 성공은 더 가치있는 것이고. 

단순히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상품이 통했다고 기뻐하는 것 그 이상으로, 우린 다시 한번

이야기의 꼿꼿한 존재감을 재확인한것이라고나 할까? 시대,문화,인종을 거스를 수 있는 그 무엇.


물론 나도 마음 같아선 컨텐츠 과다 사용자(?)로서 이야기를 창조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럴 짬(?)이 전혀 안된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건? 적어도 문화상품이 퍼지는 과정에 발이라도 하나 툭 하고 걸치고 싶은 것. 

특히 내 마음을 움직이는 컨텐츠를 볼 때마다 좋은 문화상품을 국경을 넘어서 퍼뜨리고 싶다는 내 소망은

더 들끓어 오른다. 


이렇게 길게 갑자기 컨텐츠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된 것도 DP 시즌 2를 보고 나선데, 

DP 시즌 1을 굉장히 인상깊게 봤던거라 나름 기대하면서 봤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시즌 2가 시즌 1을 보통 넘어서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DP도 넘어서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DP 시즌 1에선 군대 내의 문제들을 개인적 차원의 서사를 집중적으로 묘사해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문제의식을 보여줬단 점에서 좋았던 건데 시즌 2로 넘어가서는 사실 첫 화 빼고는

군대 얘긴가 법정 얘긴가 할 정도로 장르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것 만 같았다. 또 시즌 1에서의 

그 콤비의 케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티가 났던게 불필요한 유머를 굳이 꾸깃꾸깃 구색 맞추려고 넣은

느낌이 극 자체를 루즈하게 만들었단 느낌은 있었다. 


그렇지만 또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시즌 1에서 이미 개인적 이야기로 풀어갔다면

시즌 2에서는 또 같은 패턴의 반복은 아닌거같고 국가적 레벨로 가야 할 필요성도 느꼈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턴의 반복을 피해 또 다른 비슷한 패턴으로 넘어간 건 아닌가 싶다.

내가 작가를 해본 게 아니니 너무 손 쉽게 말하는 걸 수도 있지만.. 


하지만 이야기의 힘을 백분 활용해 우리 모두가, 나아가 세계 모두가 제대로 마주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끌고 나와주는 창작자들의 책임의식이라는 걸 생각해 볼때 DP 또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나 생각해보면

훌륭하다는 생각도 든다. 

작품 하나만 놓고 이 작품의 아쉬운 점 좋았던 점을 논하기 보다는 오늘은 컨텐츠가 가지고 있는 존재감, 

그리고 그 존재감 기저에 깔려 있을 창작자들의 의식이자 의무를 생각하면 

난 컨텐츠를, 이야기를 포기 할 수 없다. 

창작자들 화이팅!!


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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