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그렇게 조르길래
난 한국에 돌아와서 석사 준비에 더 박차를 가했다.
석사 준비를 내가 되게 체계적으로 했다면 영국 석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해 나도 나름대로 브런치에
글도 올리고 하려고 했는데 사실, 난 한 게 없다.
내가 지금 기억나는 한에서만 말해보자면(지금은 확실치 않다, 이미 이것도 3년 전 일.)
롤링베이스 시스템이라고 해서 대학교마다 오픈 시기는 다르지만 오픈 시점부터 선착순으로 석사 신청을
받고 만약 그 과에 인원이 다 차면 지원은 닫히게 되어있는 시스템이었다.
그 말은 고로,
인기 학과는 빨리 인원이 찬다는 뜻이었고 경쟁률도 꽤나 높다는 소리.
물론 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명분을 위해 비자가 필요한 것도 있었지만 석사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취업하려는 목적이 있었기도 하고 또 학문적으로 꽤나 욕심(?)이 있어서 런던 소재의 대학을
나름 추려봤었는데 추려보기만 하고 본격적인 지원 준비를 내가 너무 늦게 한거지.
모든게 내 탓이다. 아무도 탓할 수 없는 명백한 내 잘못이어서 한창 자책도 엄청 했더랬다.
또 대학교 그리고 과마다 요구하는게 달라서 자기소개서와 성적만 필요한 곳도 있었지만 킹스칼리지나
LSE같은 곳은 그 과가 제시하는 주제에 맞는 에세이도 써서 내야했고 석사 논문 같이 참고문헌도 APA
스타일로 내거나 해야 했다. 내가 정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어떨 때는 마음이 너무 급해서 돈을 내고 첨삭까지 받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난 그것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가뜩이나 언짢아하는 내 석사 도전에 돈까지 지원해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고 9월부터 열린 지원에
1월달에 난 늑장을 부리고 있었으니 사실 희망도 그다지 없었다.
난 좀 늦게 가는게 상관이 없었지만 발렌틴이 그렇게 졸랐다.
너랑 1년 이상을 더 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고. 최대한 빨리 오라고.
맘이 덩달아 급해진 나도 그 때 정말 빡세게 준비했던 것 같다. 에세이도 쓰고, 혼자 다시 자기소개서도
지웠다 고쳤다 카페 마감때까지 머리를 부여잡고 있기도 하고.
일단은 계속 지원서를 내봤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아 이번엔 안되나 하고 속은 걱정으로 문드러져 가던 찰나,
이게 웬일이야.
한 대학교에서 합격 메일이 온것이다!
영국이 날 계속 잡고 있는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부족한 자소서와 에세이로 날 붙여주다니?
그 대학교는 내가 지원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과로 유명한 대학교는 아니었지만 나름 유명한 대학교였고
난 기쁨에 몸부림쳤다. 겸손 같은거 다 빼고 난 정말 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 때 즈음에 바로
코로나가 터졌기 때문에 아마 입학을 미룬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 잉여 기회가 아마 나에게로 넘어온
것이리라고 감히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지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싶다.
이 기쁜 소식을 당연히 발렌틴에게 말해줬고 그도 뛸 듯이 기뻐했다.
이제 영어 성적만 맞추면 난 석사로 갈 수 있고, 영국을 갈 수 있고 그를 볼 수 있고!
그땐 코로나가 막 터졌을 시기여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긴 해도 국내에 7번째 코로나 전염자 뭐 이런 뉴스가
떠돌았고 난 그다지 내가 석사를 하러 가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코로나는 그 이후로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고 난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석사를 하러 떠나겠다고 고집 부리는 이상한 애(?)가 되고 말았는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것중에 이 결정도 큰 지분을 가진다.
단지 남자친구와 빨리 다시 붙어야 한다는 마음, 한국을 얼른 떠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주변상황을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하지 못하고 석사를 유예하지 않은 것.
석사 행을 마음 먹고 난 열심히 돈 벌고, 가족들과 시간도 더 많이 보냈다. 발렌틴이랑은 중간 중간에
싸우기도 했고 한번은 진짜로 크게 싸워서 거의 헤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결국 또 그 고비를 넘기긴 했다.
크고 작은 싸움들은 이제 너무 우리에게 사소한 일일 정도로 잦아져 있어서 몇 일 후에 그냥
풀어지기도 했을만큼 우린 싸움이란 것에 면역되어 있었다.
어쨌건 난 석사로 가게 되어있었고 중요한 건 내가 영국으로 곧 가게 될 거란 사실이었으며 이제 안온하게
석사 공부 열심히 하고 취업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행복했다.
무언가 다 정해진 듯한 느낌이 주는 안도감으로 난 그렇게 2020년을 보냈고 발렌틴과 나의 관계는
원래처럼 그냥 삐그덕 삐그덕 대면서도 전진하는 그런 것, 그 뿐이었다.
그러나 관계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난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날 자책하고 싶지 않은게 첫 연애인 내가 뭘 알았겠나. 얘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름 3년차였던 우리에게는 이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걔의 마음의 온도가 변하고 있고 이미 어느 정도 이상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 지 못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계속 해서 내 맘을 두드리던 불길한 촉을 무시하고 있던 내 탓일까.
그 하나만 믿고 갔던 영국에서 난 최악의 2020년 그리고 2021년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