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2017
몇 번의 뷰잉을 하고 힘도 쭉 빠지고, 이제 더 이상 고민 하기도 싫었던 나는
킹스 크로스 역 쪽에 있는 숙소로 들어가기로 혼자 마음을 먹었더랬다. 이런 거 보면 날씨가 정말 중요한 게
킹스 크로스 쪽의 숙소를 뷰잉 했을 때의 날씨가 너무 좋았었고 그래서 느낌도 더 좋았던 거 아닐까
하는 나름의 합리적인(?) 추론..
여튼, 이제 디파짓까지 넣을 준비를 다 했지만 1%의 확신이 부족해서 망설이던 중 일단
일자리라도 찾아 보자 하고 페이스북을 그 때부터 뒤지기 시작했고, 때 마침 스타벅스 파트너를
구한다는 공고에 바로 연락을 했다. 2017년 의 워홀은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스타벅스나 프렛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나도 자연스레 그 흐름에 편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연락했는데
마침 그 친구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같은 워홀 비자인걸 확인하고 지금은 소멸(?)된
사교성으로 그 친구에게 나름의 고충을 막 쏟아냈다. 집 문제는 물론,
근데 때 마침, 그 친구가 살고 있는 플랏에 방이 하나 빈다는 거다! 더 나이스 했던 건
내가 임시 거주 하고 있던 호스텔과 아주 가까운 Swiss cottage역 쪽에 위치해 있었고 방값도
비교적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3월이었지만 그때의 영국은 역시나 쌀쌀했고, 추웠던 밖과 다르게 그 방은 굉장히 따뜻했다.
난방이 굉장히 잘 되는 플랏이었으며, 일단 침대가 굉장히 컸다.
플랏 헌팅에 지칠대로 지쳤던 나는 어떤 부분에서든 안정감이 필요 했고 그때의 그 방은
그 감각을 바로 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살다 보니.. 안 좋은 점은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또 하나는 6개월 이상 장기 거주 하면 더 할인 해주신다는 집주인 언니의 말에 더 넘어가서
한달에 540파운드 씩 내기로 하고 드디어 계약 완료!
호스텔과 가까워서 짐 옮기는 것도 수월했던 기억이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인복의 첫번째 작용은 큰 도움을 줬고 게다가 집 주인 언니분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으셨던 분이다.
계약서에 직접 계약 하기 위해 그 분을 킹스크로스 역에서 만났는데 커피도 사주시고 처음 만났는데도
나를 동생처럼 여겨주시며 영국 생활에 대한 조언도 해주시고..
나 참 운 좋은 사람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 복 좋으면 나 꽤나 행복한 인간일지도..?
언니와 헤어지고 대망(?)의 NI넘버를 신청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NI넘버란, 영국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넘버로
이 넘버로 tax도 떼가는 것 보면 하여간 중요한 넘버는 맞다. 지금이라면 전화번호만 알면 그냥
전화해서 해결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영어도 지금보다 훨씬 못하고 아직도 어려운게 전화영어이기 때문에
이때는 네이버에 'NI넘버 받는 법' 엄청 검색 해서 미리 받는 질문들에 대응하기 위한 답들도
미리 준비했었다.
역시 영국,.. 상담원이 받는 것도 오래 걸릴 뿐 더러 영어를 잘 못듣 는 이들에 대한 배려 없다!
근데 뭐..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바쁜데 다 받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해는 간다만 그때는
그렇게 그들이 야속했었다.
어떻게 어떻게 잘 NI넘버도 신청을 끝내고 뭔가 그때는 착착 잘 해결되는 느낌이어서
'나 뭔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 일만 찾으면 되겠다 라는 생각에 한층 가뿐해진 느낌이었지만
역시 타국에 혼자 살기로 결심한 이상 기분의 up and down은 간헐적인 것을 넘어서
필요 이상으로 찾아오는 편.
블로그를 보니 나 참 친구한테 연락 많이 했었다. 부모님은 걱정할까봐 연락 잘 못하고
그나마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친구였는데 친구에게 어찌나 많이 털어놨는지..
글을 쓰면 쓸수록 나를 버티게 해줬던 건 내 곁의 사람들이었지 싶다. 물론 인연의 유통기한은 각각 다르고
지금 글에 쓴 분들이랑은 당연히 연락이 끊긴 경우가 수두룩 하지만
이렇게 기억을 되짚어 보니 나 감사할 사람 참 많았구나 싶다.
Anyway, 이제 '주'는 해결되었으니
돈 벌어야 했다. 돈은 어디서 벌어야 할까 생각하니 또 막막해졌었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