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인생 스승.
영국에서 사는 동안 좋은 인연으로 일하게 된 한식당을 영국에 처음 방문하시는 부모님이 방문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거였기 때문에 발렌틴을 마주치는건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한식당을
들르시는 날, 그가 일하지 않는 날이기를 바랄 수 밖에.
엄마에겐 발렌틴의 집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했던 그 날 이후 당연히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아니 말 할 수 없었다. 엄마한테 아무리 숨기는거 하나 없는 나라지만, 아니 숨겨도 결국 들킬
나지만 이것만은 엄마의 정신건강을 위해 철저히 숨겼다. 내가 그 집에서 나오던 날, 우리 엄마의 속이 얼마나
까매졌을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흐른 그 때쯤엔 내가 그 때에
내 상황에만 사로잡혀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가늠하지 않았는지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얼마나 큰 불효를
저질렀는지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별 거 아닌 일이고 외국인들은 개인주의적인게
조금 세서 엄마도 은근 걱정했는데 역시 걔도 그랬네, 그냥 신경쓰지 말고 얼른 집 찾아서 나와라 라고
덤덤하게 전하던 그 말들 밑에 얼마나 엄마의 속이 문드러졌을지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가곤 하니까.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는 이제야 점점 얼마나 당신이 원래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숨기지 않는다.
오늘까지도 단 10분이 연락이 되지 않으면 전전긍긍하며 연락처를 알고 있는 내 영국 지인들에게 연락을
서슴없이 하기까지 하는 우리 엄마가 그때에 날 동요시키지 않으려고 담담하게 했던 그 말들 안에
얼마나 큰 부피의 걱정이 숨겨져 있었을까.
외국에서 첫 남자친구를 만나 같이 여행 간 사실을 통해 남자친구의 존재를 알린 딸을 이해해준 것만도 이미
마음이 태평양같이 넓은 우리 엄마인데 한국까지 와서 같이 시간을 보냈던 딸의 남자친구가 그렇게 딸과
헤어졌다는 것까지 감당해야 했던 우리 엄마의 속은 도대체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일까.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발렌틴과 내가 가끔씩 만나고 있던 그 때 어쩌다 발렌틴 얘기가 나오면 그제서야 엄마는
솔직하게 그를 '그 새끼' 라고 칭하시곤 했다. 내 딸 그래도 영국에서 걔가 있으니까 좀 안심하고 보낸 건데,
좀 더 잘해주라고, 내가 걔한테 잘해주면 다 그게 너한테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고. 진심의 선순환을
믿는 우리 엄마는 그래서 발렌틴한테 더 진심으로 대했다고. 근데 그 놈이 그럴줄 몰랐다며 가끔씩 걔를
솔직히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 엄마에게 이제 발렌틴이 한식당에서 같이 일한다는 걸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왔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발렌틴에게 일하지 않는 요일이 언제인지 묻고 그때를 피한다고 하면 그것도 못 할 것
없었다. 그렇지만 정면돌파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냥 걔랑은 이제 정말 다른 감정 없이 이렇게 지내고 있고
아직까지 도와주는 사이라고. 만약 엄마가 아직까지 그에게 느끼는 감정이 격했다면 엄마의 정신건강을 위해
절대 못 마주치게 했을테지만 거의 2년이 다 된 지금 이젠 엄마도 이젠 그에게 그런 감정따위도 사라진지
오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래, 괜찮겠지 했다.
처음 부모님이 영국에 오신 그 날, 부모님은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거렸지만 눈물을 꾹 참고 기쁘게 부모님을
맞았다. 집에 도착하신 부모님의 짐을 간단히 두고 저녁을 집 옆의 베트남 음식점에서 간단히 해결 후,
짐을 조금씩 푸는데 짐을 보관해 놓으려 내 옷장을 아빠가 여셨는데 괜히 불길했다. 그리고,
이게 뭐냐?
설마, 설마.
미처 정리해놓지 못했던, 저기 옷장 저 구석에 쳐박아 놓았던, 발렌틴이 예전에 선물로 만들어 준 우리
커플 사진 액자였다. 난 아빠가 그걸 살펴보는 사이에 엄마에게 황급히 눈짓으로 어떻게 해야되냐고 물었고
엄마는 '아, 뭐 그런 걸 봐?' 하면서 애써 수습하려 하셨지만 이미 아빤 사진을 다 보신 상태.
아, 우리 아빠는 그때까지도 내가 발렌틴과 사귀고 그렇게 헤어졌던 것 자체를 정말 하-나도 모르셨다.
우리 아빠는 걱정쟁이들 중에서도 최고의 걱정쟁이라 얼마나 스트레스 받으실 지 뻔했기 때문에 나와
엄마 그리고 동생만 아는 비밀이었다.
난 '아, 그냥 어쩌다 알게 된 친구야 친구.' 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얼버무렸는데 사실 그 사진은 진짜 백번
봐줘도 썸은 무조건 타는 느낌의 사진들 뿐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던 건 뽀뽀하고 뭐 그런 사진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아빠는 몇 초 간 뭔갈 생각하시더니
"외국인은 안된다." 라고 하시곤 그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일도 이렇게 됐겠다 아빠가 주무시는 사이 난 엄마께 결국 털어놓았다. 발렌틴도 지금 그 한식당에서 일 하고
있다고. 엄마는 당연히 엄청 놀라셨고, 그 이후로 너 이상한 생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걔랑 뭐 다시 또 어떻게 한다는 생각 하기라도 하면 정말 너 죽을 줄 알라고 말하는 엄마한테 할 말이 없어
더 과장되게 '아 미쳤어, 내가 걔를 왜 만나.' 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내가 더 크게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식당을 가게 된 날.
사실 발렌틴이 일하지 않는 날 가려면 갈 수도 있었지만 정말로 우리가 해야 했던 일정 상, 관광 스케줄을
다 빼놓고 갈 수 있는 요일에 발렌틴이 일했고 이미 난 매니저 언니 오빠께 귀띔을 드렸다.
난 아빠가 발렌틴의 사진을 봤기 때문에 혹시나 알아보면 어쩌지 하고 엄청 걱정을 했는데 우리가 2층으로
밥을 먹으러 가자마자 2층에서 일하고 있던 발렌틴은 매니저 언니오빠에 의해 1층으로 보내졌더랬다.
엄마와 구면인 발렌틴은, 아니 구면이라고 하기엔 우리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 지었던 발렌틴을 생각했을 때
구면이라는 단어의 농도가 너무 옅다. 여튼, 엄마도 아무렇지 않은 척 발렌틴을 스윽 하고 지나쳤고
난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둘을 지켜봤다. 뭐, 물론 아무런 일은 없었지만.
푸짐하게 저녁을 즐기고 집으로 나서는 길. 아빠는 담배를 피시겠다며 먼저 나가셨고 엄마와 둘이 1층에
있는 화장실로 가기 위해 1층에 들렸다. 사실, 난 화장실을 갈 필요가 없었는데 무조건 마주칠 엄마와
발렌틴이 신경쓰였기 때문에 동행했다. 아무렇지 않아하지만 은근히 우물쭈물함이 보이는 발렌틴이 웃기기도
해서 일부러 난 더 크게 웃었고 발렌틴은 왜 웃느냐며 물었지만 이미 내가 왜 웃는지는 지가 더 잘 알면서.
어디서 내숭이야.
발렌틴과 마주친 엄마는 장난스레 그를 흘겨보더니 무슨 말을 하시고는 등을 톡톡 쳤다.
멋쩍게 웃는 그를 뒤로 하고 우린 한식당을 나섰고 난 특별히 엄마한테 무슨 말을 했는 지는 묻지 않았다.
엄마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부모님과의 행복했던 일주일이 쏜살같이 흐르고 애써 눈물을 꾹꾹 참으며 부모님을 보내드렸다.
눈물을 참으려해도 참지 못하는 우리 아빠를 보면서 난 입 안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물을 참고 게이트에
들어가셔서야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마음을 좀 정비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고 얼마 안돼 일에서 마주친 그.
2층에서 둘이 일하는 날이어서 평소처럼 일을 하다가 발렌틴이 뭔가 머뭇거리는 듯 싶더니
"부모님은 잘 돌아가셨어?" 라고 물었고, "응, 잘 가셨지. 엄마 아빠가 간 날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가시고
나니까 또 그 여운이 오래 가네. 아무래도 혼자 있던 집에 날 챙겨주시던 부모님이 빠지니까 마음이
허한 건 어쩔 수 없나봐." 라고 답했다. 마음이 정말 헛헛했다. 몇몇 친구들이 그 사이 잠깐 영국에 들려
날 만나고 갔고 그들을 보낼때도 여운은 남았지만 부모님의 경우는 당연히 다르니까.
계속 헛헛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발렌틴이 꺼낸 말에 난 결국엔 그렇게까지 참아오던 눈물을, 집에서 혼자 울면 청승맞아 보여서
의식적으로 닫아놓았던 눈물샘이 펑-하고 열려버렸다.
"너희 엄마가 잘 지내라고 그러시더라. 잘 살라면서 내 등 두드리는데,.. 음.. 목에서 뭐가 울컥했어.
나 그래서 이젠 다른 의미로 너희 어머니 절대 못 만날 것 같아." 라고.
그래, 그게 우리 엄마였다. 너무 우리 엄마여서, 인도로 돌아간지 몇 일 됐다고 단어로 전해듣는 우리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일부러 나 약해질까봐 꽁꽁 동여매놨던 그리움을, 있다가 떠나셨으니까 자연스레 찾아오는
여운일거라고 애써 치부했던 그 그리움이 저항하지 못하고 풀려버려 난 화장실에서 끅끅 하고 울었다.
나라면 그렇게 절대 못한다. 아는 척을 안하면 안했지, 우리 엄마처럼 잘 살라고 못한다. 아니 생각은 해도
그렇게 전하지 못했을건데 우리 엄마는 한다.
우리 엄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사랑이 넘쳐서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전달한
우리 엄마의 마음은 더 나에게 크게 다가왔는데 발렌틴은 엄마의 한국어가 정확히 뭔 뜻인지 몰랐지만
그냥 그런 의미일 것 같다고 했고 정말 우리 엄마는 그에게 잘 살라고 말했었다.
이젠 그가 엄마에겐 그 누구도 아닌 단지 외국인 친구일뿐이지만, 그래도 내 딸을 한때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 줬던 사람으로서 그 딸의 엄마로 빌어 줄 수 있는 거라고. 우리 엄만 그렇게 투박하게 전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 통화를 하면서 '엄마 그랬어? 뭐하러 그랬어!' 라고 했는데, 엄마는 별 일을
정말 아무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아니,그냥. 진심이었어. 그래서 잘 살라고 그랬던거지. 물론 옛날엔 정말 미웠고 지금도 아예 안 미웠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냥 이제 진짜 걔도 자기 인생 잘 살라고. 그래서 말 한거야. 그리고 어쨌건 내 딸의 남자친구였으니 내 인연이라면 인연인거고 너와 걔의 문제였지, 내가 걔한테 개인적으로 악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을 이유도 없는 거였으니까. 단지 걔가 끝을 조금 아름답게 끝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실망감이었던 것 뿐이지. 그래서 잘 살라고 한거야. 다른 이유 아무 것도 없어."
담백하게 전하는 엄마의 진심에는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가득가득 담겨 있었다.
우리 엄마한테서 나도, 발렌틴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