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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너머 Sep 03. 2023

28.Epilogue.

아직 떠나보내는 중. 

길고도 긴 내 첫 연애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와 만났던 첫 만남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시트콤 마냥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와 그의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길어질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내 영국 생활을 워킹홀리데이부터 쭉 풀어내려는 생각이었지 연애 이야기를 

주로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아무래도 지난 5년간 그와의 이야기는 내 삶의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 하고 

있던 건 사실이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른다. 

적지 않은 5년의 이야기들을 써내려가면서 연락하지 않고 싶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의도치 않게 

기억의 흔적들을 다시 훑다 보니 그와 찍었던 사진들, 문자들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글을 쓰다가도 잠시

추억의 시간들에 빠지기도 했으니까. 내가 한국으로 떠나면서 처음으로 맞이해야 했던 이별을 쓸때는 

정말 많이 울었다. 잊고 살았던 그 감정과 그때의 그 시간과 또 그의 표정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서

가슴에 스며버려서 펑펑 울고 친구한테 그때가 생각나서 많이 울었다고 고백도 했다. 

친구는 물론 아직도 그런 날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눈물이 나는걸 어쩌겠는가, 참을 수도 없고. 


이 글을 쓰면서 행복했다. 단순히 내가 그와 함께 보내왔던 행복한 시간들로 마음이 콩닥콩닥 하고 설레서

다시 한번 행복감을 느꼈다기보다는 그런 시간들로 내 지난 시간들을 채워왔던 것이 뿌듯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헛살진 않았구나 하며. 

첫 이별 후 재회를 몇 번을 하고 정상적인(?) 사이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 관계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배운 게 참 많다. 처음엔 헤어지고 나서 가장 많이 보고 들었던 말들 중 하나가 '첫 연애로 많이 배운다'

였는데 사실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도대체 뭘 배울 수 있다는 건지. 난 그대로 인 것 같은데. 

똑같이 미숙하게 대처하고 응답하고 행동하고 있는데, 첫 연애로 배운게 이거면 그 사람들 말은 모조리 다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믿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느끼고 있다. 

많이 배웠다고. 그 사람을 이해 하는 법,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것, 그 사람의 생각의 방식을 

존중해 주는 것, 사랑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 다름도 포용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이 배움은 내가 이별을 맞이했던 것처럼 갑자기 찾아오진 않았다. 살다 보니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 

그와의 관계에서 배운 것들을 어느 샌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적용하고 있는 걸 보고 '아, 나 배운게 

있구나.' 라고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 이전에 우린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으니까 너와 만나고

헤어지며 많은 걸 얻어간다. 아무리 전 연인이라도, 너와 내가 선택한 나와 너는 결국 유일하게 '우리'라는 

관계를 만들었고 딱 우리만 할 수 있는 사랑을 한거니까. 우리가 함께 선택한 그 모든 것들이 곧 우리이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만 공유하고 있는 그 감정들이 우릴 이렇게까지 이끈거니까, 그래서 후회는

없다. 


그래서 그런걸까, 그를 사귀기 이전보다 훨씬 더 사랑얘기에 이입이 잘 되는 건. 

아주 옛날에 본 '이터널 선샤인'은 다시 보기가 두려워서 다시 보지 않고 있는데다 하다 못해 환승연애 2는

너무 나와 그가 생각나서 많이 울었지. 

해은 같이 미련이 많이 남은 사람들한테 우리가 단골멘트로 자주 쓰는 말들. 

"넌 그때의 너를 사랑하는거야, 그 사람이 아니라." 라고.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그때의 나' 보다 '그때의 너'를 사랑하는거고 못 잊는 것이며 그 '시간'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것. 

단 몇 초만 얘기를 나눠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상관없이 나는 '지금의 너'에서 곧바로 '그때의 너'를

찾을 수 있어서, 그래서 그 시간들이 말릴 새도 없이 내 마음에 다가와버려서. 그래서 그렇게 힘든 건데. 

이제는 달라진 그라는 걸 머리로는 너무 잘 알 고 있는데, 모르는 게 아닌데. 근데 그때의 너가 아예 

소멸되어버린 것이 아니기에. 단지 날 향해 달라진 너의 태도의 변화일 뿐 너한테 그런 모습이 있는 걸 알아서

좀만 노력하면, 그럼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해은의 마음을 너무 알겠어서, 그래서 난 엄청 울었다. 특히 마지막 데이트 때 해은이 '난 왜 이렇게 너랑 

있는게 제일 편하냐' 라고 그랬을 때 왜 그렇게 그 부분이 슬프던지. 너랑 있는게 제일 편하고 너랑 이렇게 

쭉 지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런 말 하는건데. 단순히 오래 알아왔다는 이유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편안함으로 치환됐다는 고작 그런 걸 말하는게 아닌데. 그만큼 너랑 있을 때 제일 나다워지고 행복해서, 

나도 그렇게 너한테 매달린건데.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고 싶은 영화를 재회라고 말하는 것 처럼.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명확해서 끝이 또렷이 보이는데도 난 그 순간의 감정의 해소를 위해 너에게 연락했지. 

계속 보고 싶으니까. 


야, 너가 참 나한테 못되게 했고 내가 너한테 못되게 했던 거 다 죗값 치렀다고 생각할 만큼 나도 힘든 시간

겪었는데도, 그래서 널 미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도. 이렇게 널 애틋해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왜 이렇게 

애틋하냐. 너가 정말로 잘 됐으면 좋겠어. 뭐가 됐든, 어디서든 행복하게. 

가끔은 내가 널 이렇게 변하게 했나 싶어서 죄책감도 들기도 했다. 나보다 더 성숙하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너가 만났다면 예전의 너가 조금은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만큼 넌 좋은 사람이었고 아직도 좋은 사람이야. 


내가 '아직도 떠나보내는 중' 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유는 아직도 그에게 연락이 오면 철렁 할 게 분명해서. 

글을 쓰면서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과 그의 모습에 가끔씩 그가 연락 했으면 하고 바라는 날들이 있어서. 


어떤 책에서 기억에 마음이 붙어 버리면 손 쓸 도리가 없다고 했나, 너무 정확하게 정답이다. 

이미 온갖 마음이 다 붙어버린 기억들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시간이 아주, 정말 아주 오래 지나야

담담하게 흘려 보내지려나. 아니, 담담하게 간직하고 있으려나. 

누군가를 '사랑' 이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도 가르쳐준 너. 비록 연락은 안하지만 마음 속 깊이

어딘가에서 너가 잘 되길 항상 바라고 있다는 거. 너가 무탈하게, 꿋꿋이도 아니고 그냥 너답게 

어딘가에서 잘 지내줬으면 좋겠다고, 항상 그렇게 안녕을 기원한다고. 


가끔은 나의 모든 걸 속속들이 알던 너가, 친구보다 더 가까웠던 너와, 

시절의 한 페이지를 빈틈없이 같이 채워나갔던 너가 쑤욱 하고 빠져나가는게 너무 아쉬워서 힘들었는데

그리고 참 허무했는데. 이런거 보면 참 너무하다. 누구보고 너무하단 건진 모르겠는데 그냥 너무하다. 

두서가 없어지는 것 같아 이쯤에서 그만 쓰련다. 청결한 끝맺음을 하고 싶었는데 끝이 너무 두서가 없는 건

아닌가 해서 걱정이라 이제 진짜 주저리주저리는 그만해야겠다. 


열심히 살아볼게! 너도 어딘가에서 단단히 나아가기를! 

나에게 언제까지나 소중할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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