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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치원교사가 되기 싫었다

노안의 승무원, 유아와 함께 비행하다

by 유쾌한 철옥쌤
교사와 승무원 사이에서 피어난 나의 정체성

스무 살, 나는 유아교육과에 다녔지만 유아교사는 되고 싶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보다는 승무원이 훨씬 더 멋져 보였다. 반짝이는 제복, 세계를 오가는 삶, 그리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듯한’ 깔끔한 직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학 4학년, 한 달간의 교육실습을 마친 후 나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나는 유아교사와 맞지 않아.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한 교실 안에서는 수많은 사건이 동시에 터진다. 북치고 장구치고, 이것은 내 길이 아니야.”

그러던 중 시내버스 뒷자리에서 본 한 광고.

“ANC – Airline News Center”

그래, 승무원이 되자. 초량역 근처의 학원에 등록하고, 매일 기내 영어, 국제 매너, 바른 자세, 메이크업까지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드디어 대한항공 승무원 채용 공고가 떴고, 나는 가슴 두근거리며 1차 면접장에 들어섰다.

면접시간은 단 12초.

면접관은 우리 12명의 응시자를 빛의 속도로 스캔했고,

“됐어요. 나가세요.”

끝이었다.

나는 사이즈 77의 170cm 통통 키큰 녀자였다.

다이어트는 미친 듯이 했지만, 결국 폭풍흡입으로 끝났다.

율무 다이어트, 강냉이 다이어트… 하다 결국 다시마쌈+멸치액젓으로 마무리.

그 시절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더 살찐 라미란’이었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며 다들 “라미란 닮았다”고 했고, 나도 인정했다.

단지 배우가 아니라 현실 속 ‘노안 청춘’이었다.

하지만 그 실패는 내 삶의 방향을 ‘변경’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준 기회였다.

꿈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된다

그 이후 나는 유아교사의 길을 걸었고, 어느새 교사 연수에서 강의하는 기회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는 그곳에서 ‘승무원’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연수장소에는 승무원 복장 풀세트,

올백 머리, 쁘띠 스카프, 블라우스와 정장 치마, 그리고 기내 캐리어까지.

강의 시작 전,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2초의 침묵. 청중의 90%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를 내뱉는 순간.

“근무를 하고… 싶었지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소.

캐리어에는 색종이, 종이벽돌, 유아교구가 가득하다.

마트 갈 때도 끌고 다니는 그 캐리어는 내 ‘꿈’의 흔적이자

지금의 ‘정체성’이다.

교사와 승무원, 우리가 자주 하는 두 마디

놀랍게도 나는 교사와 승무원의 공통점을 두 가지나 발견했다.

두 직업 모두, 아주 자주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1. “기다리면 줄 거예요.”

2. “지금 일어나면 안 됩니다.”

색종이나 간식을 나눠줄 때 조급해하는 유아에게,

기내식을 기다리는 승객에게,

우리는 똑같이 말한다.

기다림을 요청하며, 자리를 지켜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조급함을 견디기 힘든 인간의 본성’이 있다.

유아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럽다.

아직 발달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도 같은 조급함을 보인다면

그건 성숙하지 못한 ‘유아적 성인’의 모습일지 모른다.

나는 교사로서 유아의 조급함은 사랑스럽게 바라보지만,

비행기 안의 어른의 조급함은… 아직도 어렵다.

혹시,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땅’을 잃었기 때문일까?

그렇다. 인간은 지면에서 떨어질 때 자기 자신과도 멀어진다.

나 역시, 바쁘고 흔들릴 때면 나 자신이 어디 서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지금도 나는 유아와 함께 비행 중

오늘도 나는 유아와 함께 교실이라는 하늘을 난다.

어쩌면 나는 ‘승무원이자 교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사람이다.

불합격의 경험이 내게 ‘불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그 경험이 유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줬다.

지면에서 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다시 단단히 땅을 딛게 도와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내가 진짜로 비행에 성공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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