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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에는 정말 좋은 일이 숨어 있을까?

교실에서 만난 초인의 철학

by 유쾌한 철옥쌤

요즘 나쁜 일이 자주 일어난다.

학생에게는 성적이 떨어지는 게, 장사하는 사람에겐 손님이 끊기는 게, 다이어트 중인 이에게는 살이 빠지지 않는 게 나쁜 일이다.

그렇다면,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들에게는 어떤 일이 나쁜 일일까?

질문하자마자, 마치 밑 빠진 독처럼 아이들의 말이 쏟아졌다.

“동생이 태어났는데 너무 시끄럽게 울어서 나쁜 일이에요.”

“주말에 캠핑 가기로 했는데 못 갔어요.”

“태권도 줄넘기 연습하는데 너무 못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너무 나쁜 일이에요.”

교실 속 유아들의 세계에는 다양한 슬픔과 아쉬움, 서운함이 물결처럼 흐른다. 그리고 교사는 그 물결 사이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오해의 민원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마주한다.

“선생님! A가 내 블록 가져갔어요!”

“B가 다리로 치면서 지나갔어요!”

“C가 거짓말했어요!”

그런 날엔 퇴근 후 멍하니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잠드는 게 전부다.

하지만 반복되는 번아웃 속에서 나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기 위해, 어느 날부터는 강의 영상이나 책 읽어주는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그날은 지나영 박사의 영상이 화면에 떴다.

그분이 한 말 중,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나쁜 일에는 좋은 일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생각했다.

‘나쁜 일은 그냥 나쁜 일이지, 어떻게 거기에 좋은 게 숨어있다는 말이지?’

이 질문을 교실로 들고 갔다.

“얘들아, 어제 유튜브 본 사람?”

“저요! 먹방 봤어요! 언박싱 영상도요!”

“선생님도 유튜브 봤어. 지나영 박사님이라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나쁜 일에는 좋은 일이 숨어있대.”

그리고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나쁜 일에는 ㅈㅇㅇ이 숨어있다

“좋은 일이요!!!” 아이들이 외쳤다.

그런데 정말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물었다.

“E야, 너는 동생이 밤마다 울어서 속상하다고 했지? 그게 나쁜 일인데, 거기에 뭐가 좋은 일이 숨어 있을까?”

“그래도요, 동생이 크면 저랑 같이 놀 수 있어요. 지금은 혼자 놀아서 심심했거든요.”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한마디에, 나는 새로운 진실을 배웠다.

나쁜 일의 이면을 본 유아의 통찰력.

아니, 그건 통찰력이 아니라 존재 전체로부터 끌어올린 진실이었다.

“선생님! 저 캠핑 못 가서 속상했는데, 엄마가 짜장면 사줘서 기분 좋아졌어요!”

“전 줄넘기를 너무 못해서 속상했는데, 어제 처음으로 3개 성공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펐는데요, 하늘에서 저를 보고 계신 것 같아서 좋아요.”

G의 말에 나는 그만 눈물이 차올랐다.

‘할머니가 하늘에서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8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꽃상여가 흔들리는 장송의 순간, 나는 그것이 완전한 끝이라 믿었다.

하지만 G는 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존재.

그녀는 그렇게 상실을 초월의 감각으로 바꾸어 내게 가르쳐주었다.

며칠 후, 그날의 감정에 이끌려

나는 유치원 교사가 입으면 안 되는 금기와 같은 옷,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했다.

점심시간, 쌈장을 퍼담다 흰 블라우스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는 중얼거렸다.

“아… 이건 정말 나쁜 일이야. 이건 진짜 좋은 일이 숨어있지 않겠지...”

그때, 고개를 돌린 J.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태어난 것 자체가 좋은 일 아니에요?”

그 말에 나는 멈췄다.

그것은 단지 위로가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었다.

존재는 그 자체로 좋은 일이라는 선언.

존엄의 가장 순수한 문장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 어린이의 세계는 초인의 세계와 가장 가깝다더니, 바로 이거였구나.”

니체는 초인이란 자기극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라고 했다.

아이들은 단지 성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다.

J의 한마디는 철학 그 자체였다.

만약 주민등록등본에 ‘인생의 문장’을 한 줄 넣을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적을 것이다.

“김철옥 선생님, 태어난 것 자체가 좋은 일 아니에요?”

‘이하 여백’이 아니라,

그 문장이 내 존재를 증명하는 서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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