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동 호서비 Dec 16. 2022

겨울에 생각나는 책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배추적에 담긴 어린 시절 추억

                                       

▲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책 표지, 부제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 ⓒ 이호영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쓴 고 김서령 작가는 안동 사람이다.


배추적은 배추에 밀가루를 입힌 전이다. 전(煎)은 서울 쪽에서 쓰는 말이고 경상도에서는 적이나 찌짐 등으로 말한다. 이 책에는 안동지역의 토속적인 말과 내용이 들어있다. 작가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고향 집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특히 이 지역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소싯적 생각이 많이 났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고향인 선산군(구미시)에서 자란 덕분에 어릴 적 기억이 남아있다. 그 기억은 부모님과 함께한 것은 아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다. 부모님은 도시에서 돈을 벌어야 했고 난 시골에서 조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밀가루를 홍두깨로 밀어 칼국수를 만드시던 할머니의 손이 그립고, 가마솥 뚜껑을 거꾸로 올려 찌짐이나 과자를 만들어주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지붕에 안채와 바깥채가 있었고 넓지는 않았으나 황토색의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가을이면 집 입구 감나무에 둥글고 큰 감이 열렸다. 그리고 뒤 안에는 감나무가 3그루 더 있었다. 가을에 감을 따다 별채 시렁 위에 올려놓으면 그 감이 홍시가 되고 겨우내 나의 간식거리가 되었다. 떪은 감이 달고 맛있는 홍시가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붉은 속살이 혀에 감기면 그 감칠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감을 깎아서 처마 밑에 매달아두면 곶감이 된다. 그리고 깎은 감 껍질을 잘 말리면 그 또한 달콤한 먹거리로 남게 된다. 감 한 개를 따면 버릴 것이 없다.      


  가마솥 뚜껑에 지지던 찌짐은 바로 적이고 전이었다. 배추로 지지면 배추적이 되고 고구마로 지지면 고구마적이 된다. 감자와 부추 등 철마다 뒤 안에서 키운 채소는 반찬은 물론 간식거리로 입맛을 돋우곤 했다.


기와집은 아니었어도 시골집에 대한 기억은 그야말로 평화롭다. 그때 먹은 음식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참으로 아득하고 맛도 좋았던 것 같다. 없던 시절이라서 아마 더욱 그러할 것이다.


늦가을 생무 한 뿌리를 잘라 먹으면 달달하고 시원한 맛을 느끼게 된다. 생무는 겨울에 먹는 것이 제맛이다. 약간 매운 듯하면서도 달고 많은 물을 담고 있어 시원하기도 하다.


어릴 적 마당에서 참새를 잡았던 기억도 있다. 커다란 소쿠리를 마당에 엎어놓고 그 속에 막대기를 넣어 긴 줄을 연결해 방안에서 참새가 소쿠리로 들어오면 줄을 당겨 참새를 잡게 된다. 물론 소쿠리 밑에는 참새가 좋아하는 쌀이나 보리쌀 등 곡식을 둬야 한다. 이렇게 잡은 참새는 구이를 해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초가지붕 밑에 손을 넣어 참새를 잡기도 했다. 초가지붕 밑에는 공간이 있어 참새가 둥지를 틀어 새끼를 키우기도 했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뱀이다. 뱀도 참새를 잡아먹기 위해 초가 지붕속을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뱀을 만나지 않을까 겁을 먹기도 했었다.


술 지게미에 대한 기억도 있다. 윗마을의 술도가에 막걸리를 받으러 갔다가 얻은 술지게미를 한 입 먹었다가 쓰러졌던 기억도 있다. 할머니께서 어린 놈이 무슨 일이냐고 야단을 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 등에 엎여서 집으로 돌아왔다.

술은 못 드시기는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인데 그날 왜 술을 받으러 갔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책 내용 중에서 명태 보푸름 ⓒ 이호영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읽으면서 어릴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린 시절이 없었던 같았는데도 마치 금방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생각이 난다. 기억이란 동류의식이 있는 모양이다.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자기의 이야기인 것처럼 여겨진다. 김서형 작가의 어머니와 어머니가 만든 음식에 대한 기억인데도 내 어머니와 어머니의 음식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은 아니어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아마도 같거나 유사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텔레비전은커녕 마을 이장 집에 한 대 있는 라디오를 듣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 모여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아 - 동구 밖에 당나무도 있었다. 회나무였나? 아름드리 밑둥을 자랑하던 당나무는 지금도 남아있다. 고향 동네로 들어가는 포장길이 바뀌면서 근래 몇 년 동안 당나무를 보지 못했다. 당나무에 올라가 멀리 보이는 낙동강을 바라보고 물길 가는 데를 상상했다. 마을 입구 당나무는 너른 들판을 지키고 있다.


당나무에서 직선거리로 한 4~500m의 들판을 지나가면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지금 살고 있는 안동 낙동강 물이 내 고향 앞으로 흐른다. 어릴 때 동무들과 모래사장에서 계란 밥을 해먹고 물놀이를 했다. 달걀 밥은 날달걀을 마시고 난 뒤 달걀 껍질 위를 살짝 벗겨 쌀을 넣고 밥을 한다. 달걀을 모래에 수직으로 세워두고 마른 나뭇가지로 불을 때면 보글보글 익어 밥이 된다. 불을 조절하지 못하면 타기 일쑤다. 탄 밥도 맛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강에서 물놀이하다 깊은 곳에 빠져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낙동강 말고도 저수지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기억도 있다. 그래서 물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년이 돼 수영을 배운 덕분이다.


김서령 작가는 고향 음식을 토속적인 말과 글로서 정말 맑고 담백하게 표현했다. 글을 읽으면서 어릴 때 음식이 생각났고 잊었던 그 맛도 되살아났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맛있게 쓸 수 있을까? 누군가는 작가의 문장이 생각난다고 했다. 글이 되지 않을 때 김서령 작가의 글을 다시 읽으면 글이 될 정도로 김 작가의 문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젠 김 작가의 글은 더 생산되지 않는다. 2018년 가을, 세상과 이별을 했다. 그리고 대학 동문 선배라는 사실도 책을 통해서 알았다. 진작 알았으면 한 번이라도 만났을 텐데, 그녀의 글을 더 읽고 싶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김서령 #배추적 #안동 #겨울밤 #낙동강 #선산




작가의 이전글 안동 비밀 공원에 찾아온 늦가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