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산천에 '공작' 벼슬을 한 군주가 매우 많다.
“우리나라도 천자의 나라였습니다. 중국만 천자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도 그랬습니다. 지금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공작’ 벼슬을 지낸 제후국 군주가 너무나 많답니다.”
한 모임에서 필자가 한 말이다. 모두들 뜬금없이 천자의 나라, 제후국이라니 하는 반응이었지만 설명을 듣고 ‘허~, 그러네’ 했다.
옛날 중국은 천자가 다스린 나라였다. 중국 봉건 국가의 등급을 보면 천자 밑에는 제후가 있었다. 제후는 천자가 임명한 지방 군주다. 제후는 모두 같은 등급이 아니라 제후마다 등급이 다르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南이 제후의 등급이다.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 그것이다. 당시 공작과 후작은 사방 백 리의 땅을 봉토로 받았다. 백작은 사방 칠십 리의 땅을 받았고, 자작과 남작은 사방 오십 리의 땅을 하사받았다. 오십 리 이하의 땅을 소유한 군주는 부용국으로 천자가 아닌 제후국의 소속이었다. 봉건제에서 제후국은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고 천자를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큰 임무였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나오는 나라들, 춘추오패(제환공, 송양공, 진문공, 진목공, 초장왕), 전국칠웅(진, 한, 위, 조, 연, 제, 초)라고 불리던 나라들은 모두 제후국이다.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의 제후들이지만 전국 시대로 오면서 천자의 힘이 약해지자 제후들이 스스로 왕으로 자칭하면서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렀다.
▲ 안동시 도산면 퇴계 묘소 퇴계 묘소 비석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적혀있다. 퇴계 선생은 높은 벼슬을 한 분이지만 '공작'의 지위는 아니었다. 예시로 들기 위해 사진을 갈무리했다.
제후국 가운데 가장 큰 면적과 백성, 군사력을 갖춘 군주의 등급은 ‘공公’이다. 매우 높은 작위인데 우리나라 산천에는 ‘공’ 작위를 가진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돌아가신 선조들의 묘비를 가만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00이공00지묘’, ‘00김공00지묘’, ‘00박공00지묘’ 등 묘비비석 문구에 적힌 ‘공公’자가 바로 작위를 나타낸다. 돌아가신 분을 높이기 위해 ‘공’자를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은 분명히 제후의 작위 명칭이다.
“후대에 가면서 제후들의 작위는 비록 살아생전에 벼슬을 하지 못했지만 죽은 사람을 일반적으로 예우하는 차원에서 붙여지기도 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묘비 등을 보면 성씨 뒤에 ‘~公’이라고 표기된 것을 흔히 본다. 비록 살아서는 평민이었지만, 죽어서는 군주로 예우하고 싶은 후손들의 마음이 녹아든 표현이라 할 것이다.” - <공자뎐, 논어는 이것이다> 유문상. p92
돌아가신 분을 높이기 위해 단순히 높임말로 ‘公’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허~’하고 웃은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산천에 누워계신 조상님 대부분이 ‘공작公爵’의 벼슬을 하신 것이다.
▲ 부모님 지방 예시 '현고학생부군신위' 지방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나타낸다. 예시를 위해 갈무리했다.
제사 지낼 때 쓰는 지방을 봐도 그렇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돌아가신 아버지를 지칭하는 지방이다. 여기서 ‘학생’은 단순히 배우는 학생이 아니다. 예전에는 최소한 ‘진사’ 등의 벼슬을 한 사람을 말한다. ‘부군’은 존칭이기도 하지만 중국 한漢나라 때 태수太守의 별칭이기도 하다. 즉 적어도 유학을 공부했고 벼슬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모두 돌아가신 조상을 예우하기 위한 표현이다.
여기서 재미 삼아 ‘공작’ 벼슬이 어느 정도 인지를 한번 살펴보자.
중국 천자가 공작 등급의 제후에게 하사한 땅이 ‘사방 백 리’라고 했다. 사방 백 리를 지금의 거리로 환산하면 가로세로 각 40km이다. 면적으로는 1600km2다. 단순히 면적 숫자로 보면 공작이 다스리는 제후국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가 사는 안동시의 면적이 1522km2이다. 의성군은 1174km2, 영영군은 815km2, 서울시는 605km2이다. 그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안동시가 사방 백 리에서 조금 미치지 못하고 의성군은 사방 칠십 리, 영양군은 사방 오십 리 정도이다. 서울시는 사방 사십 리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안동시와 의성군, 영양군은 제후국의 수준의 면적을 가졌고 서울시는 제후국도 아닌 부용국 수준에 불과하다. 이 같은 많은 제후국을 가진 우리나라도 천자의 나라였다고 할 것이다. 물론 백 리란 길이도 중국과 우리가 다를 수 있다. 또 시대에 따라서도 변할 수 있다. 현재 도량형으로 재미 삼아 계산해 봤다.
성인 가운데 한 분으로 알려진 맹자도 사후에 ‘공작’ 시호를 받았다. ‘아성추국공亞聖鄒國公’이 그것으로 살아생전 군주가 아니었지만, ‘성인 다음가는 추나라의 공작’이란 의미로 공작의 등급인 군주로 대우하였다.
▲ 맹자 사진 성인 맹자는 '아성추국공亞聖鄒國公'이란 시호를 받았다. 그는 공작의 벼슬을 하지 못했지만 군주의 작위를 받았다. 예시를 위해 갈무리했다
옛날에는 벼슬자리에 오르는 길은 대부분 공부하는 것이었다. 과거를 봐서 급제하면 벼슬을 받았다. 우리 조상들은 ‘공부’하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삼았고, 벼슬을 해서 양반으로 신분을 상승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죽어서라도 ‘공’이란 벼슬을 받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지금 전국 곳곳에 안동시 정도의 땅을 다스리던 ‘공작’ 제후들이 무수히 많이 누워있다. 그럼 천자의 나라인 우리나라를 돌아보고 등산하거나 야외에 나가서 어느 조상의 묘소 비석에 적힌 ‘~공公‘을 읽어보자. 그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면 우리 문화를 더 아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