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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Jul 04. 2024

엄마는 쓸개 빠진 여자

병원 순례는 엄마의 일상이 됐다.

"아니 무슨 의사가 아프다고 하는 다리는 한 번도 보지 않고 약을 준다고 하노?, 1년 가까이 병원에 왔지만 아픈 곳은 보지 않고 묻기만 하고 의사 맞나?"


어머니는 쓸개 빠진 여자이다. 사전에서 '쓸개 빠진 사람'은 정신을 바로 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쓸개는 우리 몸에 있는 장기 가운데 하나로 '담낭'이다. 이 담낭에서는 담즙을 분비해서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하는데 예전 사람들은 쓸개를 담력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겼던 모양이다. 쓸개가 있어야 용기가 생기고 다른 사람에게 용감함을 보여줄 수 있다고 보았다고 하겠다. 이 쓸개를 엄마는 10여 년 전에 제거했다. 갑자기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배가 아프다며  동네 병원에 갔더니 쓸개 속에 담석이 쌓였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콩알만 한 돌멩이가 수두룩 나왔다. 그리고 어머니는 쓸개 빠진 여자가 됐다.


7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가 병원에 가서 입원까지 한 적은 아마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폐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한 아버지 곁에는 늘 어머니가 지켰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머는 간병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어머니는 아플 틈이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니는 자주 아프다. 올해 우리 나이로 88살, 구십을 앞둔 상노인이다.   치과는 기본이고 피부과, 외과, 신경과, 안과 등 동네는 물론 주변 병원을 순례를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녹내장이 왔다. 백내장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녹내장이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게다 왼쪽 눈의 시력이 많이 떨어진 데다 양쪽 눈 시력이 급격히 차이가 난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는 동네 안과의의 권고에 따라 좀 큰 병원을 찾게 되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대형 병원 1층 로비


녹내장과 뇌경색, 또 얼마 되지 않아 하지정맥류까지 왔다. 다리가 무겁고 걷기가 힘들다는 말씀을 자주 하더니 결국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았다. 전문 병원에서는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하고 최신식 치료법으로 수술을 하자고 권하면서 수술비가 800만 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큰 병원 외과에서는 수술을 해도 완전히 낫지 않으니 수술보다는 약물 치료와 다리 들기 등 운동이 좋겠다고 해서 지금도 치료 중이다.


안과와 신경과 2곳으로 시작한 엄마의 병원 순례가 1년 전부터는 외과까지 3곳으로 늘었다.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3개 과를 모두 다녀야 한다. 혈압을 재고 의사의 물음에 대답하고, 안과에서는 시력 측정부터 광학 검사 등 받아야 할 검사가 많다. 또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후 1시에 들어가면 5시가 넘어서야 병원을 나온다. 또 약국에서 약을 받아야 하고... 


"약을 왜 이리 많이 주노? 약이 많이 남아있다. 또 줄텐데, 우야노?"

대형 병원 신경과 진료실


3개월치 약을 받았지만 약이 남는다고 하소연이다. 매일 분명하게 먹었는데도 약이 이렇게 많이 남았다며 병원에서 잘 못 준거라는 말씀이다. 


"그럼 병원 가서 물어보지요. 잘 못 준건지, 아니면 엄마가 매일 드시지 않은 건지를요."


진료를 받으면서 의사에게 약을 너무 많이 줘서 남았다고 푸념을 하니 의사는 날짜에 맞게 3개월치 딱 맞게 드립니다고 대답한다. 의사의 말에 엄마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한다. 진료실을 나오면서도 더 많이 줬다고 말씀한다. 


7월 진료를 마치고 10월 진료를 예약한다. 다음 진료에는 추가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고 처방을 조절하겠다고 의사의 말에  약이나 진료가 더 늘어나지 않고 이대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사라지면서  또 어떤 다른 결과가 나올지 몰라서 가슴이 답답하다. 평생토록 병원에 다니면서 쓰는 돈 대부분이 60대 이후라고 한다. 아버지의 긴 폐암 투병에 비하면 어머니의 투병은 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더 큰 문제이다. 구십에 가까운 연세에 얼마나 더 사실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몸져눕게 되는 투병 생활이 생긴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연세에 비해 아직은 정정하시지만 언젠가 병실에 누워야 할 날이 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조금 아프시면 바로바로 동네 병원을 가셔야 합니다. 그게 돈을 적게 들이고도 내 몸을 아프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큰 병원에 입원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아프기도 더 아프니까요, 빨리 병원에 가시는 게  아들, 딸을 도와주는 거라예."


어머니의 병원 순례의 마지막 말은 늘 이렇게 끝난다. 아픈 걸 참지 말고 곧바로 동네 병원에 가셔서 진료를 받아야 어머니도 좋고 우리도 좋다고 하면 


"안다. 요즘은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 간다. 내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가야지, 그게 맞다"


어머니의 병원 순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지만 당신 발로, 당신 힘으로 병원에 다닐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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