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모범생

by 김조금

다녀온 지 한 달은 거의 다 되어가는 캐리어를 드디어 방에서 치웠다. 새로 생긴 피규어를 꺼내서 방 한 면에 배치하고 물건들의 위치를 바꿨다. 방 구조를 바꾸고 싶어 생각으로만 구상하던 구조를 패드에 옮겨 그렸다. 자로 센치를 재고 실행 가능한 구조로 최대한 만들었다. 개운했다. 미뤄왔던 방 정리를 끝낸 기분이었다. 왜냐면 미뤄왔던 방 정리를 끝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미뤄온 치과를 갔다고 글을 올린 것처럼.


나는 학창 시절 게으른 모범생이었다. 공부를 잘했다는 뜻이 아니다. 탈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일상은 늘 똑같았다.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 친구들도 만나는 친구들만 만났다. 집 밖을 나갈 일이 많이 없었다. 그렇다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만 본다면 조용한 성격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또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피아노 학원의 숙제는 안 하기 일쑤였다. 내가 피아노 연습할 때 제일 잘하는 건 의자에 등을 대고 누워서 고개 젖히기였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좋아하는 게 없었던 게 아니다. 인식하지 못했다. 난 우울증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지만 인지하지 못했다. 18살이 되어서야 내가 만성 우울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심지어 우울한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 하나조차 무엇인지 몰랐다. 내가 죽고 싶어 하는 것도 몰랐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은 모 연예인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사람의 유언장이 유출이 되고 사람들은 모두 한 번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그 첫 줄을 읽는 순간 느끼는 건 공감이었다. 나는 감정 표현에 능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결국 나조차 속였으니.


알게 된 순간 숨어있던 감정들이 쓰나미처럼 덮쳤다. 거진 10년에 걸친 나의 우울한 감정들이 한 번에 몰려온 거다. 그때 나에게 던진 원초적인 질문은 내가 한 번이라도 행복을 인지한 적이 있는가? 즐거운 적은 많았어도 과연 행복을 느낀 적이 있나? 행복을 말하는 기준이 뭐지?


잊는다는 건 좋은 거다. 나쁜 감정을 지워낸다는 건 자연스럽게 기억을 못 하면 그걸 우린 극복해냈다고 한다. 나는 극복한 게 아니라 그냥 기억력이 나쁜 거였다. 방금 손에 들고 있었던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해서 온 집을 돌아다니는 건 예삿일이다. 물건을 챙기려고 바로 앞에 올려둬도 챙기지 않는다. 오늘도 어제 잊은 보조배터리를 챙기는 것에 성공했지만 소분해 둔 약통도 안 챙기고 노트북도 거실 바닥에 던져두고 나왔다. 나는 그냥 내가 좀 덤벙대는 줄 알았지.


그런 덤벙이는 사소한 것에 중요함을 느꼈다. 정확하게는 쓸데없는 것들. 남들이 비록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에겐 크게 다가왔다. 나의 첫 핸드폰은 8살에 생겼다. 집에 올 시간이 되었는데 사라지거나 학원에 늦거나 하는 이유를 보면 길가에 있는 꽃을 구경하거나 하는 등 꼭 정신이 팔려 있었다. 불안하기보단 걱정이었던 엄마는 편하게 연락하기 위해 나에게 첫 슬라이드폰을 주었다. 물론 핸드폰도 자주 잃어버렸다. 그중 하나는 마트에 갔다가 가판대에 올려둔 뒤 잃어버리기도 했다.


지금 보면 난 ADHD라고 몸으로 말하고 다녔다. 폭력성과 과잉행동도 없는 조용한 증상이었을 뿐이지. 차라리 숨긴 게 힘이라 히어로가 되면 좋았겠지만 난 숨어있던 게 이딴 쓸모없는 증상이라 어디에 써먹지도 못한다. 아쉽다. 숨긴 게 거미줄이었다면 스파이더우먼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학교에서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게 시키면 난 늘 칸이 부족했다. 요약을 못 했다. 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장면이 너무 중요했다. 엄마는 내가 쓰는 걸 보고 다 한 줄 알고 다가왔다가도 그냥 베끼는 수준의 방대한 양을 보고 놀랐다. 엄마에게 어떻게 요약해?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남에게는 스킵해도 되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소함이 사람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책을 두었을 때 사소한 것들은 꼭 적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난 그 소소하게 지나간 일상과 순간들이 쌓여 내가 되었다. 특히나 글에 줄거리와 결과만 있다면 우리는 더더욱 책을 읽을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미리 알고 넘어가야 하는 건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다. 모와 도를 오가는 건 누워서 떡 먹기라 체하면 난 그날로 죽는 날이다. 사실 제일 못 하는 게 드라마 정주행이다. 내용만 알고 싶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거지. 이건 한 입 가지고 두 말하는 사람의 글이다.


물론 사소한 것만 쫓다가 많은 걸 놓칠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목표를 잡고 크게부터 작게까지 세부화하는 능력이다. 쓸데없는 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방에 짐이 너무 많다. 작은 스티커 하나까지도 너무 소중하다. 실제로 작은 소품들을 너무 좋아한다. 작고 비싼 놈들.


물건들을 큰 박스 안에 넣어두고 꺼내지도 않는다는 건 그 상자째로 버려도 내 일상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그 상자는 보물상자가 된다.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아도 내 소중한 보물상자. 방 구조를 바꾸고 뒤엎고 싶은데 물건 정리를 해야 한다. 너무 귀찮다.


하지만 최근에 새로 시작한 책은 미루지 않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미루는 순간 하루가 이틀 되고 그게 1년, 2년이 될 거다. 자격시험이 끝나는 대로 방 정리부터 시작해서 구조를 바꿔야겠다. 낭만 있는 방을 만들고 싶다. 하고 싶은 건 참 많은데…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데 인생을 게으르게 낭비한 것 같다. 내가 ADHD라는 걸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다면 증상도 개선이 되었을 거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이루지 않았을까. 내가 수다스러운 사람인 걸 글을 적으면서 더 느낀다. 하고 싶어 하는 말은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으니 정신이 없다. 이렇게 글에 사담이나 적고 있으니 원.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다음 주에는 깔끔하게 쓰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이 무엇이냐. 없다. 그냥 난 이렇게 살아왔다.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남들이 밟아오는 초중고를 나왔으며 무난하게 대학을 갔다. 대학도 재수하려고 포기하니 엄마가 수시를 넣어야 재수를 시켜준다더라. 그중에 전형으로 예비가 붙은 곳으로 갔다. 나쁘지 않은 학교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간 학교는 고역이었다. 잘난 사람은 너무 많았다. 남들이 잘난 게 중요한 것보단 내가 못난 게 더 커 보였다. 전공을 그만두려다가도 용기가 부족해서 못 그만뒀다. 그러다가 진짜로 그만두려고 마음먹으니 그제야 알겠더라. 나는 생각보다 전공을 좋아했고 계속하고 싶어 했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내 기준 늦은 나이에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생각뿐만이 아닌 제대로. 기회가 좋아 마음 맞는 주변 사람들과 미라클모닝을 시작했다. 사람마다 진행하는 기상 시간이 다르지만 나는 고작 7시에 기상한다. 하지만 나에게 규칙성 있는 생활 자체가 챌린지다. 무리하게 일찍 일어나려고 해도 나가떨어진다. 씻고 싶어도 화장실에 입장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기에 강제성이 필요하다.


그 다짐 중에 글쓰기가 있었다. 창작 활동을 멈추니 뇌도 안 돌아갔다. 다시 내 뇌를 움직일 필요가 있다. 결과물의 완성도보다 나에게 중요한 건 시작이다. 결과물에 집착하면 난 또 제자리걸음일 거다. 미련을 버리고 무언가를 하는 행위 자체가 챌린지인 나에게 지금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이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겠다. 건강하게 질투하기로 했다. 같이 챌린지를 시작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이 글쓰기를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글쓰기 35기_2주차]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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