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물여덟 Aug 04. 2023

나는 식물을 죽였다.

사랑에 관한 고찰

  자취할 때 바질을 키웠었다. 선생님께 선물 받은 장미허브를 무럭무럭 키운 나는 이내 바질 키우기에 도전했다. 아무렇게나 놔둬도 잘 컸던 장미허브와 달리 바질은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주기적으로 환기를 시켜야 했고, 햇빛도 쐬어줘야 했다. 덕분에 아침에 바질을 데리고 나가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으며 일광욕을 했다. 반려 식물이라는 단어를 이해했다.

  그러다 관계가 산산이 조각났다. 매일 하던 런데이를 무리하게 진행했다. 무릎이 망가졌다. 더 이상 바질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 나가지 않았다. 창문도 열지 않고 매일매일 쌀을 축내고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날 바질에 검고 작은 벌레가 생겼다. 하루하루 말라갔고 왠지 온몸이 가려웠다.

  바질을 버렸다. 미안했지만 아쉽진 않았다. 집에 불청객을 데려온 바질을 탓했다. 하지만 바질을 버린 후에도 가려움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임에 빠졌다.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즐거웠다. 게임의 내가 현실이고 현실의 나는 살기 위해 에너지를 밀어 넣을 뿐이었다. 그러다 음악을 했다.

  음악은 도피처였다. 유명해지고 싶은 자아, 도망치고 싶은 자아, 성공하고 싶은 자아, 기타 모든 것들이 뒤섞였다. 음악을 만들었다. 툴툴거리며 나를 알아보지 않는 세상을 탓했다. 아직도 온몸이 가려웠다.

  문득 나를 봤다. 손톱으로 긁어댄 상처가 가득했다. 살이 쪘다.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었다.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새 바질을 만났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했다. 좁은 방구석은 창문을 열어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엔 옥상으로 올라가 스트레칭을 했다.

  담배를 끊었다. 식물을 키우면서 식물을 말려 조각내 태우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바질도 담배는 싫어하는 듯했다. 술도 끊었다. 이건 술 살 돈이 없어서였다. 꼴에 깡소주는 하고 싶지 않았다. 바질이 새잎을 피워내듯이 나도 기지개를 피웠다.

  그래도 음악을 했다. 내 감정을 쏟아냈다. 이번엔 별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지인이 들으면 부끄러웠다.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었기에. 온몸이 가려웠지만 긁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새 바질도 시들었다. 이번엔 음식을 만든다고 잎을 너무 많이 따버려서였을까? 아님 겨울이 왔는데도 환기를 해주어서일까? 아무튼 이번에도 바질을 버렸다. 여전히 술, 담배는 하고 있지 않다. 내 음악을 누군가 들어주면 그저 고마웠다. 더 이상 몸이 가렵지 않았다. 나의 자취도 끝이 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붉어진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