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붉어진다는 것은 끝이 도달했다는 것이다. 해가 질 때 온 세상을 붉은빛으로 뒤덮는다. 이는 평소에 파란색이던 하늘을 잔뜩 상기시킨다. 그리고 파란색과 빨간색이 뒤섞인 하늘은 짙은 보라색이 된다. 낮의 종말.
나뭇잎이 질 때 자신을 시뻘겋게 물들인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봄과 여름 내내 식물과 동물, 세상을 먹여 살렸던 광합성세포가 분해된다. 이내 붉게 물드는 것은 그동안 고생한 엽록체에게 미안해서일까. 이내 땅에 떨어져 썩어 문드러진다. 나뭇잎의 종말.
우리가 헤어질 때에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서로에게 심한 말을 찔러대며 점점 더 열이 올랐다. 평생 볼 일 없다는 듯이 날카로운 말을 던졌고 잔뜩 다친 마음들은 시뻘건 피를 철철 흘렸다. 사랑의 종말.
끝나가는 것들은 빨간색을 품고는 한다. 그 빨간색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끝이난 것들은 이내 붉음을 잊는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시금 빨강이 차오를 때, 생명이 순환되어 불어넣어 질 때, 끝은 시작이 된다. 다시금 찾아올 붉음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