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선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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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물여덟

당연한 이야기다. 비칠 객체가 없으므로 나의 아랫면에 그림자가 드리울지언정 바닥에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

땅바닥에 붙어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림자가 익숙하다. 발에 묶여 땅을 기는 그림자는 유구한 시간 동안 인간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깊은 바다로 나가게 되면 발밑은 컴컴한 어둠만 보일 뿐 그림자에서 해방된다.

발 밑에 거대한 어둠은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빛을 빨아들인다. 그러다 빛이라고는 하나도 닿지 않는 검은 공간이 나온다.

닿지 못하는 빛처럼 그림자도 산란되어 산산이 조각나 부서질까 아니면 저 깊디깊은 해저 한구석에 조그만 원형이 되어 어둠 속에 파묻힐까. 어느 쪽이든 그림자는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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