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이 되어버린 그림을 아시오?

'덜컥.'

by 스물여덟

파스텔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는가? 파스텔은 금방 번져버린다. 과거에 그렸던 파스텔 작품을 꺼내 보면 번지고 날아가 흐릿해져 있을 테다. 그럴 때 픽사티브를 뿌린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고정하는 재료다. 건식 재료, 잘 날리는 재료 연필, 파스텔, 목탄 등의 그림이 날아가지 않도록 고정한다.

픽사티브는 그 말대로 작품의 시간을 고정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보존될 수 있도록. 생각해 보면 서양미술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묻히고 덮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떨어진다. 그렇기에 고정해야 했다. 물감은 갈라지고 썩고 떨어졌다. 이는 금방 과거의 잔재를 털고 새로운 나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흉한 모습을 참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더 좋은 물감, 정착액을 개발했고 박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우리의 아름다운 시절은 박제되어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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