뻗어나가는 상상
인간의 눈은 비효율적이다. 혹자는 이것을 창조주의 반례라고도 한다. 그렇다 맹점 이야기다. 시각 신경을 뇌로 잇는 신경 섬유들이 망막 뒤로 빠져나가지 않고 눈 안에서 뒤로 모아져 빠져나간다. 그 점이 맹점이며 실제로 그 부분은 모이지 않는다. "나는 잘 보고 있는데요?" 그것은 뇌가 실시간으로 비어있는 부분을 보정하기 때문이다. 맹점 관련 실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로 설명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겠다.
1. 튀는 색 형광펜을 준비한다.
2. 형광펜을 뒤집어 색을 약간 보이게 하여 오른손으로 쥔다.
3. 두 손을 붙여 앞으로 쭉 펴고 왼쪽 눈을 감는다.
4. 왼손 검지를 펴고 오른 눈을 그곳에 고정한다.
5. 오른손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어느 순간 시야에서 형광펜 색이 사라진다.
우린 맹점의 존재를 증명했다. 아무튼 이렇게 구멍이 난 시야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반대 눈의 시야와 맹점 주변 시야를 활용해 실시간 포토샵을 하는 중이다. 이 밖에 여러 편집을 한다. 빛에 따른 화이트 밸런스를 맞춘다거나, 눈 두 개로 입체 시각을 구현한다거나. 이렇게 시각 보정에 쓰이는 뇌의 리소스가 30% 이상이다. 그래 인간은 뇌의 30% 이상을 사용해 시각을 보정한다.
이 리소스를 다른 곳에 사용한다면 어떨까? 두족류처럼 신경섬유가 뒤로 나가 실시간 시각 보정에 쓰이는 리소스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만큼 뇌를 더 사용할 수 있고 고점이 높아지는 것이다. 시야의 왜곡은 줄어들고 더 선명한 세상을 볼 테다. 혹은 뇌에 필요한 열량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섭취 필요 열량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덜 먹으며 식량안보의 위기도 한 발짝 밀려간다. 대신 더 살찌게 될지도.
뇌의 크기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모자란 그래픽카드를 열심히 CPU가 보조했는데 그 부담이 줄어드니까. 모든 사람의 비율이 8등신이 되고 비율 깡패들이 세상을 점령할 것이다. 옷도 더욱 잘 어울리겠지. 절대 내가 비율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분리된 채로 너무 많은 진화가 이루어졌기에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먼 우주의 외계인들은 보통 커다란 머리로 표현되곤 하는데 두족류를 기반으로 진화한 외계인들의 머리는 작지 않을까? 아, 뇌는 작아도 머리에 모든 장기가 들어있으니, 경우가 다른가? 우주 어딘가엔 비율 깡패 외계인이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