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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물여덟 Aug 08. 2023

과거의 잔재

키보드 다리를 접으며

키보드를 사면 높이 조절 다리가 하부에 붙어온다. 별 고민 없이 다리를 탁, 탁 펴서 놓는다.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쓰면 더 좋으니까 넣었겠지? 아쉽지만, 아니다. 오히려 이 다리를 펴서 사용하면 손목 건강에 오히려 더 좋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경쾌한 타건감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면 왜 좋은 점 하나 없는 키보드 다리를 만들었을까?


정답은 제목에서도 말했듯이 과거의 잔재다. 타자기를 사용하던 시절 타자기의 구조상 키패드를 평평하게 배치하지 못했다. 그렇게 타자기는 경사진 모양으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흘러 타자기가 키보드로 전환되며 기존 타자기 사용자들을 배려해 다리가 들어간 것이다. 현재까지 다리가 달려서 나오는 이유는 다른 키보드들이 모두 다리가 달려 나오기도 하고 다리를 올려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사용자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이런 과거의 잔재는 청바지에도 있다.


특히 리바이스의 청바지들을 살펴보면 주머니 쪽에 동전이 들어갈 만한 작은 주머니가 있다. 동전 지갑이냐고? 아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노동자들이 회중시계를 넣어 다니기 위해 고안된 워치 포켓이다. 현재 누구도 회중시계를 들고 다니지 않지만, 전통과 패션을 위해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놓는 패션 브랜드도 많다.


두 가지 사례를 보았다. 둘 다 과거에서 비롯된 잔재이지만 키보드는 손목에 피해를, 청바지는 전통에 따른다는 자부심을 준다. 과거의 잔재는 끈질기게 남아 나를 괴롭힌다. 어쩌면 당연하다. 나는 과거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잔재를 털어낼지, 활용하여 나를 장식할지는 내가 선택해야 한다. 나를 빛나게 하는 선택도 옭아매게 하는 선택도 모두 내가 내린 선택이다. 무를 수 없다면 손목에 쿠션을 받치듯 슬쩍 보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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