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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물여덟 Oct 30. 2023

완벽을 깎는다

전부 깎일 때까지

수학적 지식의 특성에는 이상화가 있다. 예를 들면 교실에서 원을 설명할 때 정확한 원을 그리지 않아도 이상적인 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도형에 적용된다. 점만 해도 크기는 없고 위치만 있는 도형을 의미하나 모든 점을 확대하면 크기가 생기지 않는가? 모든 선도 사실 면이고 수직선 위의 정확한 1을 찍을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는 상황을 이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현실에 정확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처럼 모든 보편자는 이상에서나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이 있다고 믿는다. 새삼 심기하다. 세상에 그릴 수 없는 개념을 정의하고 그로부터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이. 우린 평생 완벽한 평면을 마주할 수 없고 완벽한 원을 볼 수 없으며 오차 없는 직선을 마주할 수 없다. 그래서 직선을 자연과 대비되는 인공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한 개념이 이상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다른 불순한 것들을 끊어내야 한다. 지속해서 원을 예시로 들자면 직선, 찌그러짐, 변화 등 다른 특징들을 배격해야 한다. 원은 한 점에서 선까지의 거리가 일정한 한 평면도형이니까. 우리는 이상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시켜 왔는가? 그렇게 깎아내도 결국 도달하지 못할 텐데. 완벽이라는 개념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잔혹하다.


그러니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 테다. 이번의 완벽은 여기까지라고.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멈추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조각해야 할 대리석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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