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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Jun 10. 2024

우리는 슬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쁨보다 생을 마감한 노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더 큰 것은 그 죽음 속에 세상을 떠난 이의 모든 삶의 여정을 다 닮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별 속에는 그 사랑이 시작될 때의 황홀과 활활 타오르던 열정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사랑의 기쁨의 기쁨보다는 이별의 슬픔이 더 슬픈 이유입니다. 사랑이 탄생이라면 이별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노래의 대부분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연인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어 이별로 끝을 맺습니다. 노래 중에는 사랑의 노래가 많을까요. 이별의 노래가 많을까요. 단연 이별의 노래가 많습니다. 사랑의 황홀과 이별의 슬픔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도로 치면 이별의 슬픔이 훨씬 강하다는 뜻일 겁니다.


죽음을 영원한 이별이라 합니다. 썩은 이가 빠지면 시원하지만 생니를 뽑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생이별은 생죽음입니다. 살아있지만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지는 고통은 죽음의 그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어도 이별의 슬픔에 공감할 있는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인격체입니다.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에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 맺힌 절규의 대목이 있습니다. 素月의 시 <진달래꽃>에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 앞에 진달래 꽃을 뿌려놓을 테니 꽃길을 걸어서 떠나라고 합니다. 님은 떠나도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깡'을 보이기도 합니다. 진달래꽃의 꽃말이 '절제'입니다. 소월 시인은  진달래꽃의 꽃말을 미리 알고서 이별의 피눈물을 참으며 붉은색 진달래꽃 길에다 뿌린 것으로 묘사한 걸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에서 반복어 '걸음걸음'과 '즈려밟고'에서는 섬뜩함이 묻어납니다. '남의 눈에 눈물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 난다'고 합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피눈물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이별의 노래를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남은 고난의 시작'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남이 하는 말에 깊이 공감하기도 합니다. 죽음이든 실연이든 우리는 그것 때문에 언제든 슬프게 될 존재들임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들은 언제나 슬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별의 노래가 사랑의 노래보다 더 많이 만들어지고 더 '즐거이'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별 노래는 슬플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의 뺨을 후려주는 매서운 손바닥입니다.



이별의 시와 노래에는 거의 물과 길이 등장합니다. 이태리 영화 <La Strada (The Road)>의 떠돌이 광대 잠파노와 젤소미나가  걷던 길. 거기에 니노 로타의 트럼펫 연주 음악이 깔리면 관객들의 촉촉해진 가슴괴 눈물과 한숨으로 영화관의 습도가 높아질 지경이 됩니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유봉과 송화(오정혜 扮)가 걸어 내려오던 청산도 보리밭 옆 나지막한 돌담길.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장돌뱅이 허생원과 조선달 그리고 동이가 달빛소금을 뿌린 듯 메밀꽃이 흐드러진 봉평에서 대화로 넘어가는 길. 작품 속의 길이 주는 정서는 '돌아옴'이 아니라 '떠남'이어서 작품  '길'은 주인공을 넘어서는 주인공입니다.


길이 슬픈 것은 길을 걸어서 님이 떠나기 때문이고, 님은 강을 따라서 흘러가는 배를 타고 물길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가수 심수봉의 노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서도 남자는 배를 타고 물 건너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야속男입니다. 물은 떠나는 길이자 물은 눈물이기도 합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듯이, 빗속에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은 온 하늘 가득 채우고 내리는 빗물을 눈물로 만들어버리는 증폭성을 갖습니다.

 

기생 황진이는 사상몽(思相夢)이라는 名漢詩를 지었고 시인 김억(안서)은 名번역을 해냈습니다. 거기에다가 작곡가 김성태는 <꿈길에서>라는 제목의 名가곡을 지어냈습니다. 생시에 만나지 못할 임, 꿈에서라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꿈속에서 임을 만나기가 그야말로 꿈같습니다. 꿈속에서도 길은 이별입니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 따라 그 님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 님은 나를 찾으러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양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그러고 보니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청승맞게 빗물눈물 맞고 흘리는 노래들입니다. 슬플 준비가 된 가슴을 잘 울려주는 노래들입니다. 그중에 압권은 <마포종점>입니다. 궤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전차, 그리고 웅크린 전차 위로 추적거리는 비, 게다가 하필이면 왜 마포란 말입니까. 마포 포구까지만 가면 황포돛배를 타고 물길 따라 님 찾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궤도가 끊겨 더 이상 갈 곳 없는 마포종점에 선 전차. 마포종점 전차와 같은 신세 그 심정 누가 알겠습니까.


밤 깊은 마포 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 종점

여의도 비행장엔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면 무엇하나

궂은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작사 전우 작곡 김인배의 <보슬비 오는 거리>는 이 노래를 불렀던 성재희 가수가 이 노래 딱 한곡을 히트시키고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려서 이 노래에 대한 애절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작곡가이자 유명 트럼펫연주자였던 김인배 님은 가수 김필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 분이시지요. 가수 성재희는 여성이면서도 남성의 목소리인지 착각할 정도의 저음으로 노래를 불러냅니다. 밤새 울었나 봅니다. 더 이상 울음도 눈물도 여성다운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지경에서 보슬비 오는 거리의 길목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습니다.


보슬비 오는 거리에 추억이 젖어들어
상처 난 내 사랑은 눈물뿐인데

아~ 타버린 연기처럼 자취 없이 떠나버린
그 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 없네

보슬비 오는 거리에 밤마저 잠이 들어
병들은 내 사랑은 한숨뿐인데

아~ 쌓이는 시름들이 못 견디게 괴로워서
흐르는 눈물이 빗속에 하염없네


주현미 가수는 슬픔의 4박자 '눈물-비-강-길'을 모두 담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비 내리는 영동교> 이 노래를 듣노라면 마치 내 눈물이 비가 되고 빗물이 강이 되어 흘러가는 듯합니다. 습도가 너무 높아 내 온몸이 욕조에 잠긴 듯합니다. 가수 특유의 애절하고 섬세한 창법은 이미 슬플 준비가 우리의 마음을 후려치고 메치고 패대기까지 쳐버립니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그 사람은 모를 거야 모르실 거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하염없이 걷고 있네 밤비 내리는 영동교

잊어 야지 하면서도 못 잊는 것은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헤매도는 이 마음
그 사람은 모를 거야 모르실 거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아픔에 젖어
하염없이 헤매이네 밤비 내리는 영동교

생각 말자 하면서도 생각하는 건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




슬픔이란 일반적으로 연인, 친구, 부모 등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공유하던 대상이 사라졌을 때 나타납니다. 가슴으로 공유하던 크기와 깊이가 클수록 찾아오는 슬픔 정도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슬픔의 감정은 안전장치입니다.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때 자신을 외부 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방어하는 기제가 됩니다. 기쁨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 중에 그 압력 때문에 몸과 마음이 상하는 정도가 더 큰 것은 당연히 슬픔에 대한 통제입니다. 우리는 늘 슬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울어서 안된다' 이 말보다 잔인한 말도 없습니다. 자기 연민(self-pity)은 자타가 인정해주어야 하는 감정입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 내면의 억압된 감정이 해소되지 않으면 무의식 속에 잠재하여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슬픔이나 슬픔을 통한 눈물은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내 몸속에 열을 가두고 있으면 배출되지 못한 열이 나를 상하게 한다고 합니다. 더운 여름에 '더위를 먹는'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가슴의 응어리를 배출하지 못하면 견디지를 못해  '슬픔을 먹게' 됩니다. 슬픔의 시와 노래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늘 슬플 준비가 되어있어야 비로소 안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슬퍼질 준비, 많이 하시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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