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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May 30. 2024

알파와 오메가인 두 아들

1987년에 개봉됐던 SF 영화 <Back to the Future>는 개봉되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명작 영화였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으려 애쓰는 주인공의 노력과 그 가운데 일어나는 아슬아슬한 모험이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했었습니다.  특히나 영화 제2편에서는 미래 사회에서 입수한 스포츠 연감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 과거 그 당시에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스포츠 경기의 승리여부와 스코어까지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은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전지적 관찰자시점이기를 넘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지전능한 신의 경지에서 전지적 행위자가 되어보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다른 인기영화 <Terminator>에서도 과거로 돌아가 운명을 바꾸려 하는 기계인간과 운명을 지키려는 인간과의 대결이 나타납니다.


두 편의 영화는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된 영화들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 전적으로 만족하는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 항간에 유행하는 수저계급론의 원조가 되는 영어표현입니다. 물고 태어날 수저를 태어나기 전에 미리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은근히 내재된 표현입니다. 연인과의 만남은 '운명的(적)' 만남입니다. 창조는 신의 영역이고 인간은 그와 비슷한 '창조的'인 일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는 논리처럼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고 '운명的' 만남이란 내가 선택한 만남이지만 이미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만남이 이미 내정된 것이라는 걸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표현입니다.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부모는 운명입니다. 부모입장에서도 자식 또한 바꿀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사는 한 가족의 운명에 대한 기록이자 각각의 운명들이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빚어내는 사연들의 서사입니다. 가족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River runs through it>과 <가을의 전설, The Legend of the Fall>처럼 말입니다.




1912년생이신 저의 아버지와 1918년생이신 저의 어머니는 금슬이 유난히 좋으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슬하에 6남 4녀를 두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1935년생인 맏아들에서부터 1959년생인 막내아들에 이르기까지 24년 동안 평균 2.6년 터울로 한 명씩의 자녀를 출산하신 셈입니다. 24년이면 288개월인데, 어머니께서는 그중 100개월을 임신 중이셨고 또 약 100개월 동안 열 명 자녀에게 젖을 먹이셨습니다.  부모님은 나이 차이만큼 6년을 터울로 두 분 다 95세를 일기로 별세를 하셨습니다. 인구절벽시대라는 요즘이면 국가유공자로 표창받으실 애국(?)을 하신 셈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열 자녀 중 열 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상위 서열의 형제가 가지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연령 서열이 낮은 형제가 가지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사뭇 다릅니다. 부모님 두 분은 열 명의 자녀에게 공유의 추억거리도 많이 남기셨지만 두 세 자녀에게만 기억되는 추억거리를 남기시기도 했고 자녀 한 명에게만 해당하는 개별 추억거리를 남기시기도 했습니다


 한국동란 후의 베이비부머시대의 가정들은 최소 넷이상의 자녀를 가진 것이 다반사이지만 여덟 이상인 경우는 드물었고 열 명 자녀이면 아주 희귀한 경우입니다. 형제자매가 다섯쯤 면 부모님에 대한 기억 또는 추억에 교집합 부분이 크게 되고 가족사를 회고하면 '맞아 그때 그랬었지~~'로 모두 똑같이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님은 혼인 후 해로하신 햇수가 66개 성상이요 슬하 자녀가 열 명이었으니 자녀들의 추억의 합집합은 강같이 길고 가지 많은 나무만큼 사연이 많습니다.


큰 형님과 막내인 내가 공유하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미미합니다. 스물네 살 터울의 부자지간 같은 형제가 앉아 얘기를 나누노라면  형님께서는 제가 알지 못하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중의 부모님 얘기를 하시고 저는 저의 성장기인 1960년대와 70년대에 저와 부모님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 이미 결혼을 해서 병원 개업을 하신 큰 형님께서는 부모님과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 있어서 그 시절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저만큼 알지 못하신 탓에 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게 됩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 갱년기를 지나던 어머니는 두통 빈혈 등으로 자리에 누우실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형님은 대도시에 개업하고 있던 병원을 1일 휴업하고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길로 다섯 시간 걸리는 고향 집으로 왕진가방을 든 채 꼬박꼬박 오시곤 했습니다. 두어 시간 청진기와 주사기로 이루어지는 치료와 벽에 박힌 못에 걸린 '링게루' 주사(링거, 수액주사)를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과 치료가 끝나면 버스 시간에 맞추어 왕진가방을 챙겨 들고 다시 떠나던 당시 30대 의 낯설고도 서먹했던 젊은 의사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강하게 남은 기억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은 두 형제간에 다소 일치하지만 왕진을 하고 떠난 이후에 대한 기억은 나만의 기억입니다.


사나흘 간은 누워서 편히 쉬어야 한다고 '왕진의사'가 신신당부했어도 어머니는 그리 하지를 않으셨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정성을 다해 치료를 해준 탓에 씻은 듯이 일어나 전처럼 씩씩하게 일상을 영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연합니다. 천하명의로 믿고 있으며 고향의 지역사회가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라는 의사 아들이 먼 거리를 달려와 치료를 했는데도 당신께서 여전히 자리보전하고 있으면 자식의 '명의'로서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형님과의 대화 중에 열 명의 자녀들이 먹고 자란 어머니의 모유 아닌 모유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칼국수를 좋아합니다. 어머니는 마당에 놓인 평상 위에서 '안반'이라고 부르던 판을 놓고  안반 앞에는 광목천을 깔고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덩어리를 얇게 폈습니다. 두 손을 벌렸다 모았다 하면서 홍두깨를 조금씩 당기는 동작을 반복하는 가운데 홍두깨에 감긴 반죽은 점점 길어져갔습니다. 어린 눈에는 볼 때마다 신기하고 경이로웠습니다. 홍두깨가 을 뭉게 평지로 만든 불도저 같았습니다. 그다음에는 보자기보다 더 넓어진 반죽을 길게 착착 접어서 칼로 썰어내셨습니다. 경이롭게 지켜보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손바닥만 한 반죽을 따로 잘라내주셨습니다. 그걸 받아서 부엌 아궁이 잿불에 올리면 벙그렇게 부풀어 오르다가 푸쉭~하며 바람이 빠져나갑니다. 그렇게 구운 것이 구수한 간식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만의 추억이라고 알고 살았던 이 사실을 큰 형님께서는 마치 어머니와 자신만의 추억을 공개하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와 어머니만의 추억인양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말의 배신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만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말하는 부모 된 이의 심정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생물학적 이유 말고도 한부모와 얽힌 추억을 공유할 때 그 '피'가 엄청나게 진해지는 관계라는 사실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피 속에 들어 있는 DNA 못지않은 DNA가 추억을 반추하는 동안 살아 꿈틀댄다는 것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성경에는 처음과 끝을 뜻하는 말로 그리스 문자  첫 알파벳인 일파와 끝 알파벳인 오메가를 씁니다. 한부모에게 알파인 첫아들과  오메가인 막내가 마주 앉아 나누는 부모와의 추억담은 가족史를 새로 쓰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 형제 중 하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은 여집합으로서 한 가족의 서사를  풍요롭게 만들었고, 시대를 달리하되 내용은 똑같은 추억담은 교집합으로서  끈끈한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습니다.


돌아갈 회(回) 자를 쓰는 '憶'은 과거의 추억을 단지 되뇌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추억을 현재로 데려와 현재를 새로운 모습으로 가다듬기도 하고, 역으로 현재를 과거로 데려가 과거에 대한 답을 얻기도 한다는 개념으로서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학자 E.H. 카 가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인용하면 우리 가족사는 24년 터울의 맏이와 막내가 서로의 과거와 현재가 되어 이어가는 대화이며, 모든 역사는 '현대사(당대사, contemporary history)'라고 말한 이탈리아의 역사가 크로체의 말을 인용하더라도 우리 가족사는 두 형제가 나누는 대화를 나누는 현재라는 시점에서 과거를 회억하는 스토리인 것입니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역사가가 부여하는 의미에 의해서만 역사의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의 객관성-만일 우리가 그 판에 박힌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기로 한다면-은 사실의 객관성일 수 없으며, 오로지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일 수 있을 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저, 김택현 역 165쪽)


우리 형제들이 알고 있는 부모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엄격히 말하면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자식들인 우리들의 기억, 수십 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다소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맏이와 막내의 기억 속의 사실들이 서로 인과관계를 맺고 다른 형제들의 '검열과 교정'의 과정을 거치며 객관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한 가족의 증보판 가족사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나이 때문에 운전이 불가능해진 큰 형님 내외를 모시고 다녀온 고향으로의 2024년 4월 26일, 3박 4일 여행은 운명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운명을 재해석 재평가해볼 수 있었던 'Back to the Future 2024- 회억 여행'이었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삶을 살아오면서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속에  어우러진 자신의 삶을 재탄생시키고 동시에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시대를 재평가하여 한 편씩의 논문을 쓰게 됩니다. 그래서 노인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하는가 봅니다.


형님, 형수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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