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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Jul 03. 2024

커피맛 술맛 담배맛 그리고 사람맛

동파의 진면목

커피의 맛은 처음에는 원두 자체로만 먹은 맛이었을 것입니다. 먹어보니 힘이 나고 피로감이 사라져서 자꾸 먹게 되었고 그러다가 볶은 맛도 즐기고 마지막에는 볶은 것을 물에 우려내어 마시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담배를 처음에  피운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습니다. 추측하건대 처음에는 담배 연기만 흡입한 게 아니라 다른 식물의 연기도 마셨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를 흡입하던 중에 담배 연기를 흡입한 사람들은 그 맵고 쓴맛에 익숙해지고 무엇보다도 다른 것이 아닌 담배를 자꾸 찾게 되는 현상에 빠져 들었을 것입니다. 중독된 것입니다.


술에 빠지는 과정 또한 비슷할 것입니다. 처음에 술을 마신 사람들은 쓴 맛에 얼굴을 찡그리고 부들부들 떨다가 잠이 잘 오고 과민한 신경이 둔해져서 마음이 편해진 듯하고 소심이가 대심이가 되기도 하니 점점 쓴 술을 즐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위의 세 기호물의 공통점은 맛은 쓰지만 쓴 맛 뒤에 나타나는 효과 때문에 그 쓴맛도 함께 즐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들의 쓴 맛은 소태나무껍질처럼 무조건 쓴 맛이 아니라 마시고 난 후에 나타나는 현상 때문에 사랑받는 기호품이 된 것이겠지요.


만성적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에게 건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식품들이 있습니다. 당뇨환자에게는 흰쌀밥보다통곡물밥이 좋고 순환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오메가3가 함유된 식품이 도움이 된다는 식입니다. 통곡물밥이 더 맛있고 오메가3 함량이 높은 고등어가 첫 입에 맛있었다기보다는 건강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자주 먹게 되고 먹다 보니 그 맛도 즐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 맛이 좋았다면 그 사람은 좋은 기운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본명보다도 東坡(소동파) 잘 알려진 중국 송나라 시인 蘇軾(소식)은 <題西林壁(제서림벽)>이라는 시로  유명합니다.  현대인들도 많이 사용하는 '진면목'이라는 말이 바로 이 시에서 유래한 걸로 보아 시인의 명성과 그의 시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가로로 보면 산줄기 옆으로 보면 봉우리
원근고저, 보는 곳에 따라서 각기 다른 그 모습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
이 몸이 이 산속에 있는 탓 이리


처음에는 서로 쓴 맛을 주고받으면서 아웅다웅하다가 나중에사 서로의 眞面目 알고 손잡고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는 삶의 동반자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眞面目을 잘못 알고 잡았던 손을 놓고 서로 딴 길로 가는 인생도 있긴 합니다. 진면목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만큼 어렵습니다. 산속에 들어앉아서는 산의 본모습을  알 수없습니다.  숲의 진면목은 숲을  벗어나야 비로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살아계셔서 함께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는 부모의 사랑과 베푸는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부모의 가르침을 '잔소리'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부모의 기력이 쇠하면 노부모를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부모의 眞面目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인 김소월은 시를 통해 부모에 대한 회한을 이렇게 토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근원적 관계를 보여주며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자식은 자식일 뿐. 부모가 되어야 부모의 마음과 사랑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어렴풋이 뿐입니다.

부 모
                                     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운명이란 말까지 들먹이며 불붙었던 사랑도 眞面目을 알게 된 이후에야 endless love가 될지 한순간의 불장난이 될지 판가름이 납니다. 달콤한 사랑의 황홀과 꼬린내나는 취두부의 구역감도 첫 순간의 것이 眞面目이 아닙니다. 괴로운 황홀, 행복한 꼬린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와신상담 고사의 상담의 주인공이었던 월나라왕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그와 고난을 함께해 온 범려는 구천이 오나라를 무너뜨리는 복수를 이루자 구천을 피해 달아났고 역시 구천을 도와 복수를 이루게 한 문종은 토사구팽 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범려는 제나라로 달아날 때 문종에게 구천을 조심하라고 일렀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두어지는 것이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입니다(토사구팽 兎死狗烹). 월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장경조훼 長頸鳥喙),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대부께서는 왜 월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까?"


고시 공부를 하는 남자를 위해 고생을 하며 뒷바라지한 여인이 고시에 합격한 남자에게서 버림받는 류의 이야기는 드라마의 흔한 소재였습니다. 현실 속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인가 봅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된 배우자는 돈과 재혼을 해버리고 받들 유산이 많으면 부모의 아들이 아니라 돈의 아들이 되어버리는 자녀들이 있는가 하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속담은 사람이 짐승이나 다름없을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만 표리진동(表裏眞同)한 한결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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