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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Mar 09. 2023

♬봄날은~간다

노래와 시로 엮은 드라마 <봄날은 간다>

바야흐로 봄입니다.

갈색의 겨울 나무가 연두빛 생명의 기운을 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채색의 겨울 거리가 화사한 봄옷의 군상들로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영국의 시인 T.S.Eliot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 올리고

기억과 욕망으로 뒤섞여

잠든 뿌리가 봄비에 뒤척이는데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작은 생명을 길러주었잖아

      

겨울은 움직임, 소리, 향기없고 미각도 잃어버리동면의 계절입니다. 망각과 가사(假死)의 달콤함에 취해 겨울잠을 자는 곰의 휴식과 평화를 깨버리는 봄은 난봉꾼입니다. 죽은듯 조용하던 겨울왕국이 눈을 채우 귀를 두드리는 것으로 넘쳐납니다. 시인 Eliot은 봄이 침입자같다고도 합니다만 실상은 이쁜짓 하는 사람을 미워죽겠다고 역설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정원에 꽃잔치가 시작됩니다.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봄을 찾아 설중매매화, 잎이 나기를 기다리지도 못해 기어이 피고마는 목련을 필두로, 향기의 꽃 라일락,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모란, 장미에 이르기까지 봄은 화려한 꽃 세상, 계절의 여왕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 되는 시절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사람도 한시절 가장 아름다운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은 '사람꽃'이 아닐른지요.


안치환 가수는 노래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한겨울 추위를 외로이 땅속에서 이겨내고 봄이 오면 살포시 미소지으며 피는 꽃같은 사람,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꽃을 피운 사람은 누가 뭐래도 정녕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봄에 피운 사랑이 해피엔딩 러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본능-욕망-충동-사랑으로 기승전결을 이룬 사랑이 또 다시 시작되는 기승전결로 가슴앓이 널뛰기를 하다  파국을 맞으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일까요?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를 아시지요?

나그네는 봄날에 이룬 사랑의 연인을 떠나 이제 추위 속에 길을 떠나게 됩니다. 전체 24곡 중 제4곡 <Erstarrung(결빙, 동결)>사랑하던 그녀와 함께 따뜻한 봄날 거닐었던 들판을 추운  겨울에 이제 나그네되어 지나가는 장면입니다. 그녀와 함께했던 봄날의 들판에 선 나그네는 이제 혼자입니다.  가슴이 너무 시립니다. 그녀의 발자욱이 남아 있을 들판을 눈이 덮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추억이 깃든 대지를 덮은 눈이 야속하기만합니다. 자신의 뜨거운 눈물로 눈을 녹이고 그녀의 발자국에 키스를 하고 싶다고 독백을 합니다. 이 순간 아무리 무딘 남자라도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습니다.


가수 BMK   또 다른 <봄날은 간다> 여자 '겨울나그네'되어 사랑의 아픔을 이렇게 눈물로 절절히 노래했습니다.   


니가 떠난 그후로 내 눈물은 얼 수 없나봐

얼어붙고 싶어도 다시 흐른 눈물 때문에


널 잃은 내 슬픔에 세상이 얼어도

날이 선 미움이 날 할퀴어도


뿌리 깊은 사랑을 이젠 떼어낼 수 없나봐

처음부터 넌 내 몸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그 어떤 사랑조차 꿈도 못꾸고

내 널 그리고 또 원하고


난 니 이름만 부르짖는데

다시 돌아올까

네가 내 곁으로 올까  


                          

혹한에는 실연으로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얼지도 않습니다. 갈수록 더 뜨거운 눈물이 다시 흐르니까요. 겨울 들판에 차가운 눈으로 덮인 연인의 발자국을 눈물로 녹여서 찾으려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나 처음부터 한몸이었던 같은 운명의 사랑때문에 다른 사랑은 꿈도 꾸지 못하는 '여자 겨울나그네'나 흘리는 눈물이 참으로 절절합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님의 침묵-한용운)

이럴 줄 알면서도 사람은 누구나 한때 불나방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시절을 삽니다. 이별의 아픔이 올지라도 봄은 정녕코 사랑이 싹트는 계절인가 봅니다. 사랑은 지식이 아니라 느낌이니까요.




봄. 바야흐로 사랑을 시작해야할 계절입니다.

박노해 시인은

여름은 열 게 많아서 여름 

가을은 갈 게 많아서 가을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이라면서 봄은 왜 봄이라 했을까요?

봄은 볼 게 많아서 봄이라고 했습니다.

 

봄은 영어로 spring입니다. 샘, 용수철, 튀어나오다 이런 뜻을 가집니다. 봄이 가진 특징을 모두 담고 있고 우리의 '봄(보다)'이란 말과 속뜻이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랍니다. 먼 옛날 우리 조상님과 앵글로색슨족 조상님이 중앙아시아 어디쯤에서 모여 의논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겨울에 얼었던 개울과 샘물이 녹고 죽은듯했던 초목들이 물을 빨아들여 용수철처럼 대지를 뚫고 튀어나와 우리의 시선을 끕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의 영어적 표현이 'out of sight, out of mind'일 것 같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겠지요. 볼 게 많은 봄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쁘고 오래 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품은 사람과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는 봄을 살아야지요.


예전에는 열여섯 나이를 '방년 16세', 열여덟 나이를 '낭랑 18세'라고 했습니다. 스무고개를 넘어가는 열아홉은 사랑의 황혼기였습니다. 남가일몽 일장춘몽일만큼 인생은 짧았고, 개인적인 욕망은 전족 당하는 발처럼 꽁꽁 싸매고 살아야 했으니 꽃시절을 놓치면 나의  이름을 불러 내가 꽃이 되게 할 님을 못만나게 됩니다.


요즘에는 anytime anywhere하게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게 가능합니다만 예전에는 개인 우체부인 방자 향단이 없는 연애는 어처구니없는 맷돌이요, 사랑의 개울물이 마르면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 없을 물방아였습니다. 광한루가 없어도, 칠월칠석이 아니라도 오작교가 언제든 놓여있는 요즘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한양천리길을 한나절만에 갈 수있는 요즘과는 달리 '조자룡이 월강하던 청총마'가 없으니 보고파도 님을 볼 수 없던 때였습니다.


우리나라 노래 중 노랫말이 가장 아름답다는  손노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봄날은 간다>를 살펴봅니다.

꽃 시절 봄날을 맞아서 님과 함께 알뜰한 약속을 했건만 먼길 떠난 님은 소식이 없고 꽃 시절 봄날은 속절없이 흘러감을 애절하게 표현한 노래입니다. 한편의 시가 그대로 영화인 것들이 있습니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가 도포입고 밀짚고깔모자 쓴 나그네가 구름에 달 가듯이 휘적휘적 강변을 걸어가는,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지는 생생한 노을빛 동영상이라면, <봄날은 건다>는 진달래 연분홍 치마의 방년 열여섯이  새파란 풀잎의 낭랑 열일곱을 거쳐 붉은 노을로 지고 열아홉 황혼에 드는 3부작 드라마입니다. 눈앞에서 촤르르 촤르르~~영사기가 돌아가는듯 합니다.

(1 절)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울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맹세에 봄날은 간다.


봄바람 불때면 누군들 설레지 않으리요.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Down by the Sally  Garden>의 '내 사랑' 아가씨는 나무에 나뭇잎이 자라듯, 언덕에 풀이 자라듯 사랑을 편하게 받아들이라 남자에게 조언할 만큼 성숙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노래 속의 성황당 길에서 옷고름 씹는 여인은 수줍고 애타는 어린 누이같은 여인입니다.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주듯이 산제비가 님 소식을 물어주길 바라며 성황당 성황님 앞에 합장을 합니다. 여인의 기도는 들어지지 않습니다. 꽃이 피면 같이 울고 꽃이 지면 같이 울며 님과 함께 알뜰하게 맺었던 맹세에도 봄날은 갑니다.


여인의 기도는 장미화 가수의 노래에서 체념과 원망으로 다시 환생하는듯 합니다

꽃피는 봄이오면 내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언덕에 올라보면 지저귀는 즐거운 노래소리

꽃이 피는 봄을 알리네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서 있네

푸르른 하늘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아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만약에 신이 여자를 남자의 노예로 삼으려했다면 아담의 발에서 여자를 만드셨을 것이고 여성을 남성의 지배자로 삼으려했다면 아담의 머리에서 여자를 만드셨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애타는 여자의 가슴을 지켜주라고 아담의 가슴뼈로 여자를 만드신 것이라면 연분홍 치마의 수줍은 여인이 사모하는 남자는 신이 만든 사람은 정녕 아닌듯 합니다.


(2 절)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달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연분홍 수줍음이 꽃으로 피어 님을 기다렸습니다만 이제 지쳐서 져버립니다. 여인은 아직도 새파랗게 젊지만 님이 찾아주지 않는 자신은 이제 꽃이 아니라 풀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물에 떠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마냥 흘러갑니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 거스르지 않고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용기로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나지만, 풀잎은 살던 땅을 떠나 낯선 물의 세상에서 흘러만 갑니다.


그래도 님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꽃편지는 님이 보낸 걸까요? 아니면 님에게 보내려고 쓰다만 편지일까요? 

청노새 역마차가 혹시라도 님의 편지를 싣고 올까 언덕에 올라 역마차 길을 망연히 바라봅니다. 역마차는 뽀얀 먼지만 일으키고 그냥 지나치고 맙니다.


달이 뜨면 님 만날 기쁨으로 짓던 수줍은 웃음이 별이 질 때면 헤어져야하는 아픔에 눈물이 되던 님과의 아름답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하늘의 별이 지면 여인의 눈에는 눈물의 별이 뜹니다. '알뜰한 맹세'가 정녕 '실없는 기약'이 되고마는 건가요. 그렇게 봄날은 갑니다.   


강이 풀리면

                              김동환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임도 탔겠지  


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  

동지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3 절)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함께 웃고 새가 울면 함께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꽃이 지면  함께 울던 마음,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사랑도 이제는 깊어가는 황혼 속에 슬퍼집니다.

황혼은 몸에만 찾아오는 저녁이 아닙니다. 사랑의 계절이 저무는 황혼은 더욱 슬픕니다.

바람따라 구름처럼 왔던 님이 바람따라 가버렸습니다. 산고개 성황당 길이 아니라 훤하게 뚫린 신작로길이라도 뜬구름되어 흘러가는 님을 잡을 길 없습니다. 성황당 길을 날며 님소식 전하던 산제비와 함께 웃고 웃었건만 이제는 얄궂은 노래로  슬피웁니다.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이 아름다운 이유는 백조의 마지막 노래처럼 슈베르트 최후의 비장함이 녹아있기때문입니다. 손노원 작사 박춘석 작곡의 <봄날은 간다>가 아름다운 것은 1950년대판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이기  때문이고 이루지못한 사랑의 <미완성교향곡>이기 때문이겠지요. 열아홉 나이에 사랑의 황혼을 선언할만큼 모든 걸 바친 사랑이 저물었기 때문에 슬프고도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드라마입니다.


천년을 씨앗으로 있다가 기어이 고운 연꽃으로 피어난 연자씨앗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씨앗을 마음밭에 심고 살아가는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한 아이가 하얀 백사장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따스하고 하이얀 모래를 두손 가득히 움켜잡았습니다

이것이 사랑이랍니다


손을 들어 올리자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이별이랍니다


아이는 흘러 내리는 모래를 막아 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것이 미련이랍니다..


다행히도 손안에는 흘러 내리지 않고  남아있는 모래가 있습니다

이건 그리움이랍니다


아이는 집에 가기 위해 모래를 탁탁 털어 버렸습니다

손바닥에서는 남아 있는 모래가 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추억 이랍니다


아무리 털어도 털어지지 않는 모래는 사랑의 은은한 여운 입니다

아이는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영원한 사랑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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