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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Nov 12. 2023

수컷.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슬픔

늑대. 남자는 억울하다. 하필이면 짐승 중에 포악한 놈에 비유되다니. 이런 비유를 한쪽은 여자들일 것이다. 뭐가 불만이어서 그랬을까. 한 때 '짐승남'이란 말을 만들어서 남성의 야성적 매력을 존숭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그럼, 여자들이 말하는 늑대는 뭐지. 사실 늑대의 포악은 '어쩌다 포악'이다.  놈들은 군집생활을 하고 위계질서가 분명하다. 수늑대만큼 가정적인 동물도 없을 이다.  브레드 어너 bread earner로서의 의무에도 충실하다. 먹잇감을  사냥하면 암컷과 새끼들이 먹을 때 보초를 서고, 먹고 난 뒤에 그제야 남은 것을 먹는 수컷이다. 이쯤 되면 남자는 늑대를 닮아 억울한 게 아니라 늑대처럼 살아서 명예로운 일이다.


인간의 본능 중에 가장 강한 본능은 물론 생존본능이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제1의 본능이다. 굶게 되면 기어코 먹을 것이고, 훔쳐 먹다가 얻어맞으면 한사코 죽어라 도망칠 것이다. 죽어라 도망친다는 말은 죽겠다는 말이 아니라 죽을 지경으로 힘들어도 도망쳐서 기필코 살고 말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삶의 의지가 강한가.


남자는 생존본능에 못지않은 강한 종족번식 '의무'를 본능으로 타고난다. 자신의 후손이 곧 자신이라는 인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나를 남기지 않고는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 봉건시대의 사고방식이겠으나, 현대에 와서 인식이 다소 약해졌겠으나 종족번식 본능은 여전하다. 그탓에 뭇여성들의 돌팔매질에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철부지 남자들도 적지 않다. 


유목민들의 일부다처 풍속은 종족번식 본능에 충실한 결과이다. 건조지역에서 오아시스를 차지하여 부족을 살아가게 할 확률은 전사들의 수와 비례하므로 그들의 일부다처 풍습은 전사의 수를 늘리는 생존전략이었다. 일기당천(一騎當千)은 한 명의 기병이 천 명을 당한다는 뜻이다. 천 번의 칼질을 성공해야 기병이 살아날 수 있을 확률이다. 일부다처제가 유목민 기마병 일기당천의 전략적 확장이라면 얼마나 슬픈 운명의 일부다처인가.




사마귀를 본 적이 있는가? 조그만 몸 어디에서 그런 야성이 숨어 있는지 놀랍다. 螳螂拒轍 당랑거철이라 했던가. 수레를 만나도 그 바퀴에 덤벼드는 녀석의 야성은 빛난다. 말벌 중에서도 타이슨 급의 장수말벌은 무시무시한 놈이다. 그래서 사마귀 입에는 더 맛있다. 힘겹게 싸워서 이긴 승리의 맛이 더해졌으니 더 맛있다. 사마귀의 야성은 교미에서도 빛난다.  교미를 마치면 수컷은 잽싸게 내빼야 한다. 머뭇거리다가는 암컷의 먹이가 된다. 짝짓기 철은 가을이어서 먹을 것도 적은 데다 단백질 보충으로 더 많은 알을 낳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얻기 위해 사랑 행위로 힘 빠진 숫사마귀를 잡아먹으려 든다. 이 순간 빛나는 야성은 간 데 없다. 야성의 자리에 더 많은 후손을 얻기 위한 작전상 후퇴가 있을 뿐이다. 수컷의 야성은 여기까지이지만 암컷의 야성은 끝이 없다. 교미가 끝난 뒤에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암컷의 가시 달린  발을 피해 살아나려면 36계 줄행랑이 상수다. 수컷은 종족번식 임무를 이미 수행했고 암컷은 이제 몸속에 잉태한 새 생명을 키울 에너지가 필요하니 암컷에게는 남편의 생존보다도 알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 이런 카니벌리즘을 문학적 메타포와 직유로 삼은 경우도 분명 있을 터이나 아직  적은 없다. 벌레의 경우라서 벌레 취급받은 게 분명하다. 인간도 사랑의 행위가 끝나면 남자는 깊은 잠에 빠지고 여자는 냉장고 문을 연다고 하니 삼라만상은 한 가지 원리로 다 통하나 보다. 인간이 벌레와 삶의 방식을 공유하다니 벌레를 무시할 처지는 아니다. 벌레도 함부로 잡지 않는다는 불가의 도가 일리가 있다.


반대의 경우가 있긴 하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수사자를 제거하고 새로 우두머리가 된 젊은 수사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죽은 우두머리 수사자의 새끼들을 모두 죽이는 일이다. 암사자들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암사자는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새로운 새끼를 가지지 않는다. 젊은 수사자는 자신의 새끼를 가지게 하기 위해 예전 우두머리의 새끼들을 죽이는 것이다.  암컷은 태어난 새끼를 우선 삼지만 수컷은 자신의 새끼를 낳아줄 암컷에 우선순위를 둔다.  암컷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으나 2세가 생기는 순간 수컷은 찬밥이다.


'관이 향기로운'수사슴은 다른 수사슴과 싸울 때에 향기로운 관이라는 뿔이 무기가 된다. 송곳니도 없고 날카로운 발톱도 없으니 뿔을 창으로 삼아 머리를 디밀어 돌진한다. 중세의 서양 기사들의 마상 결투를 연상시킨다. 한쪽이 죽거나 도망가야 끝이 난다. 더 비극적인 것은 두 마리 사슴의 뿔이 뒤엉켜서 천적의 먹이가 되거나 아사하는 경우이다. 사마귀, 사자, 사슴 어느 경우나 수컷이 당하는 비극의 뒤에는 암컷이 있고, 더 뒤에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꾸민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종족번식의 본능 탓에 수컷으로서의 남자는  방랑자이기를 원하며 자연인이기를 꿈꾸며 산다.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는 남자는 배요 여자는 항구라는데 바다는 大海요 대해라서 망망하니 떠나는 핑곗거리도 궁색하지 않다. 항구는 배 떠나는 곳이자 배 돌아오는 곳이다. 죽을 때 되어 솔베이그에게로 돌아오는 망나니 페르귄트는 남자가 아니라 수컷일 뿐이다. 남자들은 자신에게 친절히 대하는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 아니런가. 이 또한 종족번식 본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별로 혼자가 된 부부 중 재혼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남자들이다. 음식 조리를 포함한 집안 살림살이가 어려워서라고 하지만 간편식과 끓이기만 하면 되는 제품들이 많다. 세탁기에 건조기에 심지어는  '스타일러'라는 이름의 가전제품까지 있으니 영양실조나 꾀죄죄한 홀아비 스타일을 면할 수도 있다. 이렇듯 세상은 변했어도 남자들의 재혼 행진곡이 끊이지 않음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론으로 해석이 된다. 이론 역시 또한 남자들의 종족번식 본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 포유류 수컷은 체격은 크고 힘은 강하지만 목숨은 굵고 짧다. 암컷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강하고 굵고 짧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종족번식 열망과 의지로 인한 에너지 소모가 암컷보다 훨씬 더  크다. 암컷과의 교미를 두고 수컷들 간의 물리적 다툼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고, 그것으로 사망하는 개체도 간간이 나온다.


수컷 간의 물리적 다툼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게 방사 닭장 안의 수탉이다. 유정란을 받기 위해 수탉은 필수이지만 두 마리 이상이면 전쟁이 일어난다. 암탉 쟁탈전이다. 싸우다 죽는 경우도 있지만 싸움의 결과로 서열이 정해진다. 서열 1위 2위 3위 가 아니라 한 마리의 왕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다. 암탉 곁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는 독수공방 신세가 된다. 조선시대 왕가에서는 혼인이 필요할 때에 전국에 혼인 금지령을 발령했다. 왕의 혼인이든 왕자의 혼인이든 전국 모든 미혼 여성들이 잠재적 간택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수탉에게서 배워서 그랬다면 웃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얘기만아니다.


가축 수컷은 천덕꾸러기이다. 닭, 오리 또는 젖소 같은 가축의 암컷은 알이나 우유 같은 좋은 식재료를 생산하지만 수컷은 번식의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면 모조리 살처분된다.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소, 돼지, 양의 수컷은 육질이 좋아지도록 거세를 해버린다. 경주마나 투우 또는 소싸움 등 인간의 구경거리가 되는 동물의 수컷은 몸값이 천정부지가 될 수도 있으나  버는 돈은 인간의 것이 되고 동물 자신은 검투사 신세로 살다가 늙으면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 것이다.


 거세를 요즘은 중성화수술이라고 한다. 거세된 수컷은 더 이상 수컷이 아니다. 궁중의 내시뿐 아니라 반려동물 중성이 되면 수명이 길어진다. 유전적 요인있다. 수많은 생물 종에서 암컷은 XX로 동형, 수컷은 XY이거나 XO로 이형 성염색체가지고 있다. 동형의 염색체가 이형 염색체보다 더 유전적으로 튼튼하기 때문에 암컷의 수명이 길다. 반대로 암컷이 이형 성염색체를 가지는 경우는 암컷의 수명이 더 짧다. 그래서 조류는 수컷이 암컷보다 더 오래 산다. 그래서 조류가 되려는 남성들이 있는 건가. 제비족 말이다. 궁안에서 살던 내시들이 그 시대 남자들의 평균수명보다 더 오래 살지 않았던가. 거세당해야 비로소 오래 살아볼 수 있는 있는 운명의 존재인 수컷들. 남성성을 지불하고 나서야 몇 년의  시간을 덤으로 받을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슬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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