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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Sep 04. 2023

그래도 괜찮은, 엄마 육아일기


그래도 괜찮은


                              김편선  솔뫼


노랑 봉고차에서 내리며

해사하게 웃는

뒤돌아 친구들에게

손 흔드는


종알종알

오늘을 이야기하는

공시랑공시랑

집안일을 참견하는


곤란한 물음에는

그저 해맑게 웃어버리는

묻지 않아도

하고픈 말이 많은


나가겠다고 

바깥에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그러다가도

싸악 씻겨주면

세상 편한 잠을 자는


이제는

그래도 괜찮은






[엄마 육아일기]


“엄마, 밥 먹자”

“괜찮아, 너 얼른 먹어.”


요즘 엄마랑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이다. 누구나 엄마와 나누었을 듯한 참 정겨운 대화이다. 그러나 나는 이 대화에서 아릿한 행복을 느낀다. 


엄마의 치매는 서서히 다가왔다. 함께 사시는 아버지께서 먼저 답답함을 말씀하셨다. 자주 부모님댁을 방문하던 큰언니도 엄마가 좀 이상하다고, 총기가 흐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치매 검사를 했다. 초기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드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치매가 우리들의 일상을 흔들지 않고 지나가는 나날들이었다. 


2년 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즈음이었다. 김장 때문에 옥신간신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엄마를 모시고 올라오기로 했다. 먼길에 지치신 엄마에게 잠깐 말을 건네는 사이 앞차를 들이받았다. 사고 수습을 하고, 119를 타고 병원에 갈 때까지만 해도 별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의식도 있으셨고, 말씀도 다 하셨고, 보기에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기에 그저 좀 귀찮게 되었다는 생각만을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엄마는 사경을 헤매셨다. 다행히 응급 수술은 잘 되었고, 긴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쟁의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사고 이전과 달리 일상 생활이 힘들게 되면서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해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아지셨다. 아버지의 태도에 화가 난 우리 형제들도 아버지와 갈등을 겪게 되고…….


그래도 우리는 나름 방법을 찾아갔다. 낮에는 주간 보호센터를 가신다. 주중에는 좀 여유가 되는 큰언니와 오빠가 수시로 시골집을 챙기고, 주말은 나와 동생이 번갈아가며 돌봐드린다. 그래서 요즘 난 두 주에 한 번꼴로 친정에 간다. 


나의 엄마 육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토요일 일을 마치고, 서둘러 내려가면 주간보호센터의 노란 차를 타고 오는 엄마를 맞이할 수 있다. 힘겹게 차에서 내려서는 뒤돌아 친구분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엄마, 밥 먹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안 먹어.”


마치 세 살박이 아이의 밥을 먹이듯이 김에 밥을 싸서 먹이기도 하고, 수시로 국물을 떠먹이기도 한다. 좋아하지 않는 고기 반찬을 올려주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신다. 당신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으시면 수저를 들고 맛나게 드시는 모습은 얼마나 흐뭇한지. 목욕을 시켜드릴 때는 부끄럼 때문인지 귀찮음 때문인지 엄청 떼를 쓰신다. 그래도 막상 뽀얗게 씻겨드리면 기분 좋아하시며 어떤 옷을 입으실지 눈이 분주해지신다. 절약이 몸에 배신 엄마가 일회용 기저귀를 빨고 계실 때가 있다. 나는 그럼 “엄마, 내가 빨게.” 한다. 때로는 주섬주섬 이것저것을 싸주실 때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은 기꺼이 받아든다. “엄마, 고마워.”라는 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럼 우리 엄마는 참으로 해맑게 웃어주신다.


엄마 육아는 나에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며, 큰 행복이다. 엄마와 보내는 일상이 너무 소중하기에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엄마. 울 엄마. 평생을 당신이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표현하지 못하고 사셨을 울 엄마. 지금은 당신의 기쁨, 즐거움, 투정, 불만 등을 다 표현하시는 울 엄마를 보면 어쩌면 엄마에게 이 시간은 평생을 보상받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일상이 기쁨만 있어서 기쁜 것은 아니다. 슬픔도 아픔도 있고, 때론 교통사고처럼 순식간에 다가와 우리를 흔들어놓는 사건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들도 송편을 빚듯이 우리의 마음을 잘 빚어서 쪄 놓으면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될 수 있다. 예쁜 통에 담아서 리본까지 묶어놓으면 큰 감동이 되기도 한다. 


“엄마, 목욕하자.”

“안 해도 돼. 아까 했다니까.”


이번 주말에도 나는 엄마와 작은 실갱이를 하면서 엄마 육아 일기 한 장을 채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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