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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Sep 29. 2023

다섯째와 여섯째

그애들의 방학


습관이라 하면 왜 좋은 습관보다 안 좋은 습관이 생각날까? 내게 분명 좋은 습관도 있을 텐데. 클렌징 안 하고 잠자기, 밥 먹고 나면 일단 눕거나 기대기, 해야 할 일을 두고 핸드폰 들여다보기 등등. 나를 돌아보니 참 안 좋은 습관이 많다. 



 방학이 되면 두툼한 탐구생활 책이 주어지던 그 시절. 6남매의 다섯 째, 여섯 째. 두 자매가 있었다. 그 자매는 세 살 터울이고, 다섯 째가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가 4학년 차이가 났다. 



 방학식을 하던 날의 풍경이다. 여섯 째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마루에 책을 펼친다. 탐구생활이며, 그림 그리기, 글짓기 등 숙제를 시작한다. 골목대장인 여섯 째가 숙제를 하고 있으면 대장 없이 놀 수 없는 네 명의 남자아이들도 그 집 대청마루에 함께 엎드려 숙제를 한다. 



 여섯 째는 2~3일이면 모든 숙제를 다 끝낸다. 그 시절엔 빠지지 않는 일기 쓰기 숙제까지도. 할머니께 여쭈어서 서울 작은집이랑 막내 고모 집, 천안 둘째 고모 집은 언제 가는지까지 알차게 챙겨서 미리 일기 쓰기 아니 작문을 한다. 날씨 칸만 비워놓고.



 여섯 째는 숙제를 끝낸 그 순간부터 정말 신나게 논다. 눈 뜨면 나가서 저녁밥 먹으라고 엄마가 부를 때까지 논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냇가에서 물놀이하기, 고무줄놀이 등 긴 여름 해가 짧기만 하다. 네 명의 남자아이들은 골목대장이 노니까 따라서 논다. 자신들의 숙제는 분명 다 끝내지 않았음에도.



방학식을 하는 날의 풍경이다.  다섯 째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마루에 가방을 던져둔다. 그리곤 텔레비전 앞에 앉거나 밖으로 쌩하니 놀러 나간다. 저녁 늦게 들어와서는 저녁밥 먹고 나서 탐구생활 펼쳐서 몇 장 아는 것만 휘리릭 한다. 



 다섯 째는 방학을 하자마자 신나게 논다. 눈 뜨면 나가서 저녁밥 먹으라고 엄마가 부를 때까지 논다. 활동적인 편이 아닌 다섯 째는 아이들과 고무줄놀이, 냇가에서 물놀이 정도이지만 여섯 째와 마찬가지로 긴 여름 해가 짧기만 하다. 할머니께서 부르시면 물도 길어다 드리고, 소 여물을 주는 것조차 다섯 째의 놀이이다. 



 개학하기 2~3일 전. 여유 있는 여섯 째와 달리 다섯 째는 방학 숙제하느라 정신이 없다. 여섯 째의 일기장을 보고 날씨를 적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힐끔 보고 지난 일기 쓰기를 한다. 아니 작문을 한다. 독후감 쓰기 같은 글쓰기는 좋아해서 미리 숙제가 되어 있는 편이다. 아 참. 잔디씨도 훑어서 편지 봉투 반 정도 채워야 한다. 그렇게 간신히 숙제를 해서 학교에 간다. 그래도 하긴 한다. 



 여섯 째가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나는 다섯 째다. 동생의 글쓰기나 웅변 원고 등은 챙겨봐주면서도 정작 내 숙제는 미룬다. 다섯 째의 미루는 습관과 여섯 째의 미리 하는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어떤 일의 마감이 닥쳐오면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하고, 미리 할걸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또 이게 스릴 있다. 특히 글쓰기 같은 경우는 시간의 압박이 좀 있어야만 생각이 잘 나기도 한다. 자기변명, 자기합리화 같지만. 



 이번에 일주일의 여름휴가를 가면서 집 정리를 좀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어 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하루가 꼬박 걸렸다. 출발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천안에서 후포까지 3~4시간을 운전해야 하는데. 운전은 몸에 밴 것이라 잘 갔지만 울릉도에서의 첫날은 졸리고, 다리도 아프고 너무 힘들었다. 둘째 날부터는 쌩쌩해져서 울릉도 곳곳을 잘 돌아다녔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니 깔끔한 집이 참 좋았다. '아! 이래서~'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약속했다. 이제는 집안일은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하겠다고. 돌아온 지 10여 일이 지났다. 아직까지는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나름 집안일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요즘이다. 어제는 반짝반짝 세탁조 청소도 했다. 



 "여러분. 이제 아무 때나 저희 집 오셔도 됩니다. 다만 냥이 털코트는 어쩔 수 없어요."



 좋은 습관이든 안 좋은 습관이든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닐 거다. 그렇다면 나의 오늘 하루하루가 또 다른 습관을 만들어가겠지.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으면 틀에 나를 넣어서라도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도록 해야겠다. 내일의 나가 더 행복해지도록.



내가 쓴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빛나는 날 


                             김편선(솔뫼)


바로 하면 집안일

뒀다 하면 노동


아! 오늘도 노동이다


그래도 뽀드득

밥풀도 고춧가루도  립스틱 자국도

뽀드득

하고 나니 내 얼굴이 빛이 난다


그래도 뽀드득

설움도 술렁거림도 흔들린 시간도

뽀드득

하고 나니 내 마음도 빛이 난다


오늘은 빛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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