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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Sep 02. 2023

밥 한번 먹어요

지인과의 영원한 이별, 그 이후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지만 ‘밥’을 안 먹고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 잘 지내지?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참 자주 한다. 밥이 술이나 커피 등 다른 음식으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결론은 뭔가 먹고 마시면서 만나자는 것이다. 핵심은 만남이지만 주인공 자리에는 ‘밥’이 앉아있다. 나의 인생철학은 ‘밥’을 주인공 자리에서 내보내고 ‘사람’을 그 주인공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물론 ‘밥’이 여전히 우리 사이에 있기는 하겠지만.


20여 년 전


한가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어제 통화했던 후배의 이야기가 담긴 문자였다. 문자의 내용은 후배의 부고! 슬프다는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아팠다. 문자를 받기 전까지 전혀 아프지 않았는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감기 몸살 증세가 심했다. 당연히 가봐야 하는 장례식장에 갈 수 있을까 염려가 될 정도였다. 남편도 말렸다. 멀기도 하고, 일도 있고, 또 그렇게 몸이 아픈데 어디를 가느냐고 말이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후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버스에 올랐다. 



약 기운에 잠깐의 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야 나는 어제의 통화를 떠올리며 눈물이 나왔다. 


“언니, 나 아들 낳았어. 그런데 수술해서 아직 아기 젖도 못 물렸어. 내일이면 우리 아들 젖 물릴 수 있어.”


그 행복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다시금 가슴이 아려 왔다. 같은 동아리에서 함께 하던 우리가, 자취방도 옆방이라 함께 밥 먹은 날들도 정말 많았는데 좀 멀리서 산다는 핑계로 늘 언제 한번 만나자,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만 했다. ‘밥’ 한번 먹지 못하고.



그래서 나는 “밥 한번 먹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바로 약속을 잡는다. 얼굴 한번 보자는 친구들의 전화에 캘린더를 펼쳐서 스케줄을 확인하고 약속을 잡고 달려간다. 



오늘도 누군가는 나에게 “밥 한번 먹어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난 “언제 시간 되세요?”라며 핸드폰을 열어 캘린더를 확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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