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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16. 2023

마당 없는 집

내가 살고 싶은 집

나는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는 나만의 공간이다. 

무엇보다 생활의 편리함이 매력적이다.

베란다 창문만 열면 바깥바람을 데려올 수 있지만, 일 층이다 보니 환기할 때만 창문을 열게 된다. 

아늑한 나만의 동굴이 되어준다. 그러나 고립된 나만의 동굴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마당이 없는 집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큰 창과 그 앞에 작은 테라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큰 창을 통해서 바깥 풍경을 바라볼 것이다. 

눈이 내려 쌓이는 모습, 

까치밥을 쪼아먹는 까막까치의 모습, 

소나기에 흙바닥이 패는 모습, 

폭퐁우에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

복사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배나무도 두어 그루 심어서 달 밝은 봄밤에 배꽃의 미소도 봐야 한다. 

때로는 창 앞 작은 테라스에 앉아서

바람을 즐길 것이다. 

잠깐 의자에 기대어 졸아도 괜찮다. 

차 한 잔을 마실 때면

하늘과 바람과 햇살도 함께 마신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마당이 없는 집이다. 아니다. 마당이 아주아주 넓은 집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나의 마당이 되는 집이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나의 마당에 내려설 수 있는 그런 집이다. 

집은 크지 않아야 좋다. 

집은 작아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큰 책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서재를 갖고 싶은 욕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제는 서재를 꾸며서 책을 잔뜩 쌓아놓는 것도 정말 나의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e북도 있고,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있지 않은가?

욕망을 버리고 보면 그저 침대 옆에, 책상 위에, 식탁 위에 시집 한 권, 에세이 한 권, 소설책 두어 권이면 충분하다. 

서재에 대한 욕망은 버리려 하지만 큰 책상은 꼭 있어야겠다.

큰 책상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때론 의자 위에 무릎을 올려 앉아서 멍하니 생각에 잠기고도 싶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오면 이 모든 것을 함께 즐겨도 좋을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문을 열고 나가면 만나는 모든 풍경이 마당이 되는 마당이 아주 넓은 집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집안에 큰 책상이 있어서 책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아주 넓은 집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마당이 없지만 

온 세상이 내 집 앞마당이어서 마당이 아주 넓은 작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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