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편선 Sep 23. 2023

오늘도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가슴 설레는 주말이다. 

살랑살랑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더 설렌다.

오전에 얼마쯤의 일을 하고 나면 떠날 수 있는 토요일이어서 일하는 시간도 그리 힘들지 않다. 


카순이와 만나고 차박 여행을 시작하길 2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카순이랑 차박하기"가 또 하나의 이름이 되었다. 

차박 커뮤니티에서 나의 별명이 '길동이'일 정도로 난 매주 여행을 떠났다.

개별적인 일정으로 주말 차박 여행을 떠나지 못할 때는 주중에 퇴근박을 하기도 하고, 일요일 저녁에 잠깐 노지 캠핑장에 들러 기어이 화로대에 모닥불을 피워 불멍을 하고는 했다. 

이제는 내가 차박 여행을 간다는 인식을 아예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을 정도로 차박 여행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 중이다. 오늘 가는 곳은 최근 나의 여행지 중에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이다. 

오늘 내가 가는 곳은 바로 친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친정을 잘 가지 않았다. 친정은 집안 행사 있을 때만 가는 곳이었다.

부모님 생신, 명절, 혹은 이런저런 경조사 때만.


내게 친정은 썩 편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들처럼 이런저런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하셨고, 그러고 나면 예민한 엄마는 병이 나시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문제가 생겨도 혼자 해결했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세상살이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부모님께 돈 부탁 한번 드리지 않았다. 

결혼 생활이 힘들 때도, 사업을 정리해야 해서 꽤 많은 빚이 생겼을 때도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했다. 

친정은 그저 또 하나의 의무 같은 곳이었다. 

시부모님 안 계신 내게 시댁 같은 친정이었다. 물론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몇 년 전 엄마가 초기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그때만 해도 엄마의 상태가 우리들의 생활을 흔들지는 않았다. 

다만 좀 더 부모님께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의무감이 조금 더해진 느낌이었다. 


그러다 교통사고 후 엄마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퇴원 후 엄마를 집으로 모신 이후부터 나의 친정 나들이가 잦아졌다.

처음에는 의무감이 더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와의 시간이 즐거워졌다.

80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온 날이 얼마나 되었을까?

평생 주어진 일로 허덕거리며 살아오셨을 엄마가 자기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시게 된 것이 딸로서 너무 기뻤다. 

답답함에 잔소리하시는 아버지 등 뒤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나를 보고 함께 웃기도 하시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싫다고 고갯짓도 하셨다.

간혹 투정도 부리시는 엄마가 밉거나 귀찮지 않고 어린 딸을 보듯이 사랑스러웠다. 

제법 먼길을 오가는 것이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다.

엄마를 좀 더 사랑하는 시간이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나의 여행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