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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02. 2023

장발장, 우리가 만든 우리의 모습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는 책 읽기를 제외한 문화생활에 그닥 취미가 없는 편이다. 대학 졸업 후 지방 소도시에 살 때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 지역에 오는 온갖 공연을 빠짐없이 보러 다니기도 했고, 결혼 생활이 힘들 때에는 혼자서 조조영화가 심야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하지 않아도 답답하지 않은 요즘의 나를 보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나에게 음악은 그저 배경 같은 것이고, 영화나 연극공연은 내가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표현 정도인 듯싶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글감을 받고 바로 떠오르는 영화가 없었다. 머릿속은 계속 시끄러운 상태로 ESG 낭독독서 북클럽 시간이 되어 책을 펼쳤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최재천의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이다.

“나는 어쩌다 운 좋게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게임의 룰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만일 전혀 다른 룰이 지배하는 사회였다면 처절하게 낙오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전주와 함께 화면을 꽉 채우는 배가 보이고, 배 뒤로 목과 팔다리에 족쇄를 찬 죄수(노예나 다름없는)들이 줄지어 밧줄을 당기고 있었다. 그들 위로 쏟아지는 물보라가 죄수들을 먹어버리듯이 뒤덮고는 사그라질 때 그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Look Down" 바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다. 


 

나는 레미제라블의 첫 장면에 압도당했다. 그들의 부르는 노래 "Look Down"을 들으며 빵 하나와 바꾼 19년 장발장의 삶이, 죄수 개개인의 억울함이, 자베르 경감의 삐딱하지만 굳은 신념이, 낯설었던 뮤지컬이 한꺼번에 내 안으로 훅 들어왔다. 장발장과 판틴의 만남, 그로 인한 코제트와의 인연,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도 잘 표현되어 있다. 곳곳에 흔적을 남겨놓은 19세기 프랑스의 혼란함과 가난, 부조리, 혁명의지 등도 충분히 훌륭하다. 그럼에도 난 첫 장면에서 영화의 모든 것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자베르 경감의 신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자베르 경감은 영화 “변호인”의 차동영 경감과 같은 부류이다. 차동영은 국가가 있어야 국민을 지키고, 약간의 희생이 있어도 국가권력은 공고히 유지되어야 하며, 자신은 경찰이라는 입장에서 필요악적 존재로 더러운 일을 맡아한다는 비뚤어진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자베르 경감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장발장은 죄를 지어서 감옥에 왔고, 탈옥을 시도했기에 그만큼 형이 가중된 것이다. 가석방되지만 죄를 지은 인간은 변화할 수 없고, 그래서 계속 감시의 눈길로 지켜봐야 한다. 자베르 경감의 그 무모한 신념이 참으로 두렵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주관이 있고,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뜨리는가? 그 생각을 하면 참으로 두렵다.

 


“장발장”, 그는 범죄자인가? 그렇다. 범죄자이다. 그가 왜 빵을 훔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자. 그러나 단지 빵 한 조각을 훔쳤을 뿐이다. 제대로 된 법의 판결을 받았다면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19년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장발장은 “19년의 의미. 나는 법의 노예였다.”라고 말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인 삼청교육대가 생각났다. 중학교 때쯤이었던가. 아마 그 당시 대학생이던 오빠가 사다 놓았던 책이었으리리라. 나는 삼청교육대라는 제목을 보고 서울교대, 인천교대, 청주교대 이런 류의 교육대학교인 줄 알았다.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면서는 중학생 그 어린 마음속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찼다. 눈물인지, 억울함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이며~’라는 글감을 보며 가볍게 쓰려고 마음 먹었는데, 영화의 첫장면처럼 무거워져 버렸다.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우리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게임의 룰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그 게임의 룰이 공정한가, 그 공정함은 누구의 입장에서 판단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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