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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09. 2023

차박하는 시인

나의 꿈은...


논두렁에 심어둔 메주콩이며 서리태콩 꼬투리가 여물어가기 시작할 무렵이면 작은 개울 건너 밤나무들은 이미 영글대로 영글어 실한 알밤을 툭툭 떨어뜨리고 있었다. 왜 알밤은 넓은 땅바닥을 두고 풀이 우거진 개울로만 떨어지는건지. 안개가 걷히기 전 이른 새벽.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망태기 하나 챙겨 들고 알밤을 주우러 가곤 했다. 우리집 밤나무이건만 부지런한 동네 아이들이 다녀가기 전에.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다. 코끝을 간지르는 새벽의 공기, 발에 채이는 풀잎의 까슬함과 알밤을 주울 때 손끝에 닿는 시린 개울물, 밤송이의 각각 다른 정도의 따가움 등. 이런 기억들이 내 마음에 詩의 씨앗을 살포시 뿌려둔 듯 싶다.



중고등학생 때는 시인이 꿈이었고, 시를 조금씩 쓰곤 했다. 마지막으로 시를 쓴게 언제였더라. 아마 셋째 언니 결혼식 때 축하시를 쓴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리곤 한 20여년을 마음만으로 썼다.



마흔이 넘으며 내 삶에 대해서, 남은 생에 대해서, 나의 미래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였다. 정말로 내가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설령 내가 하고싶은 것이 있더라도 현실의 벽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차박도 詩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생각은 많이 했지만 답은 내지 못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생각은 많이 했지만 꿈은 꾸지 못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다 남편이 쓰러졌다. 뇌경색이었다. 긴 병원생활의 시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병원생활에 적응해갔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오롯이 혼자의 생활에 적응해갔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지않은가. 나의 상황이 그러했다. 남편의 병원생활은 여러모로 나에게 어려움과 불편함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오롯이 '나'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는 캠핑을 하고 싶었지만 장비의 압박과 텐트를 치고 걷는 등의 수고를 할 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나와의 적당한 타협을 통해 차박을 시작했다. 바다를 보고, 산을 오르고, 엄마 곁에서 있다보니 한두편 시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맞는건지 시를 생각하고 있다보니 우연히 초대받은 북클럽에서 함께 시를 쓰게 되었다. 얼마전에는 공저 시집의 초고를 끝냈다. 아마 올해가 가기 전에 시집이 나올 듯 싶다. 열심히 작품을 써서 내년 쯤에는 개인 시집도 낼 계획이다.



차박하는 시인, 차박하는 작가. 멋지다. 좋은데……. 자! 이제 현실적인 고민을 해보자. 어떻게 먹고 살거지?



지금 난 논술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다. 어른들말대로 그럭저럭 밥은 굶지 않고 살고 있다. 요즘 꿈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몇가지 방법은 시작을 했고, 또 몇가지는 아직 생각속에 있다.



차박하는 시인, 시 쓰면서 차박하는 아줌마, 할머니.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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