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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11. 2023

행복한 다이어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처음 맞이하는 아픔보다 이미 아는 아픔이 더 힘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뚱뚱해봤다. 아니 사실 내 인생 대부분이 통통과 뚱뚱 사이였다. 뚱뚱해봤기에 그 불편함을 너무 잘 알기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매일 먹는 두부도 팽이버섯도 너무 맛있고 치킨이나 라면을 먹지 않아도 슬프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상이 뒤숭숭하던 2020년 초. 그때는 본업과 알바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차량 알바(25인승 통학통근버스 운행)를 하고 있었는데 큰 차를 운전하다보니 등이나 허리 특히 어깨가 많이 아팠다. 그래서 중간에 잠깐씩 비는 시간이면 걷기를 했고, 근처에 사는 셋째 언니와 시간을 맞춰서 함께 걷기도 했다. 걷다보니 어깨 통증이 조금씩 좋아졌고, 3개월쯤 걸었더니 몸무게도 살짝 줄어있었다.



나의 다이어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통증때문에 시작한 운동이 다이어트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걷기의 효과로 살이 좀 빠지자 식단도 조절하기 시작했다. 어쩜 주변 환경도 이렇게 맞춤인지. 술마시기 좋아하는 남편은 곁에 없고,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고, 우리 집은 외곽이라 배달이 안 되거나 배달비가 비쌌고……. 세박자가 딱 맞았다. 


냉장고에 표를 만들어 붙여두고 매일매일 몸무게를 기록했다. 만보이상 걷기는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에도 했다. 한여름 태풍이 불때도 온몸 적어가며 걸었다. 모든 식사는 현미밥과 야채, 버섯, 고기 등의 단백질과 비타민 위주의 식단으로 바꿨다. 나중에는 국물요리도 딱 끊었다. 


경계에 걸쳐있는 몸무게였긴 했지만 그래도 3~4개월만에 몸무게의 앞자리를 바꾼 나는 연말까지 몸무게의 앞자리를 한 번 더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둘째 형부는 언니와 나에게 인센티브를 걸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내 몸무게의 앞자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을.


여름엔 살이 잘 빠진다고 하는데, 7~8월에 내 몸은 단 100g도 빠지지 않았다. 정체기였다. 그동안은 한달에 2킬로 정도는 꾸준히 빠졌는데. 


그래도 난 걷고 또 걸었다. 차에 항상 운동화를 준비해두고 10분이라도 시간이 비면 운동화 갈아신고 걸었다. 주말에는 무리되지 않는 곳으로 등산을 가기도 했다. 광덕산, 성거산, 태조산, 서운산. 주말에도 일할 때가 많았던 시절이었는데 아침에 등산갔다 출근하거나 일을 끝내고 와 오후에 산에 오를 때도 있었다. 하루는 너무 늦게 산에 오르기 시작해서 내려올 때는 이미 해가 졌다. 무서워서 막 달려 내려왔던 그날의 산길은 지금도 오싹하다. 



그렇게 연말결산을 하는 12월. 내 몸무게는 앞자리가 바뀌고도 한참을 내려가 있었다. 당당히 형부에게 인센티브도 받았다. 예쁜 옷 사입으라 하시며 봉투에 신사임당 몇 장을 곱게 담아주셨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다이어트. 쉽지는 않았지만 걷기의 즐거움을 알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확찐자가 되고 나는 확 빠진 사람이 되어서 예쁜 옷들도 많이 얻었다. 그러나 보니 뚱뚱할 때는 못 입던 옷도 입어보면서 내 스타일도 찾아갈 수 있었다. 


나는 뚱뚱한 사람으로 사는 불편함을 잘 안다. 이미 아는 고통이다. 그래서 되돌아가고 싶지 않기에 오늘도 행복한 다이어트를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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