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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12. 2023

너의 선택으로 난 참 행복했어.

반려견 콩이와의 만남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을 만난다. 그때마다 우리는 쉽고 어려운 결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선택은 산들바람처럼 가벼운 생활의 기쁨이 되기도 하고,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과 함께 올 때도 있다.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것은 여름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기 시작되는 유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출근을 하려고 집은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 차가 가는 방향과 반대편에서 넌 해맑게 웃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너를 스쳐 지난 다음에야 ‘아! 쟤 다리 아픈 모양이네. 절뚝거리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돌릴 때까지의 그 몇 초 동안 머릿속은 지진이 난 듯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일단 가보자. 불러서 오면 다행이고, 아니면 네 팔자인거고.’하면서 차를 돌려 너의 옆에 세웠다. 무릎을 굽히고 

“아가야.”

하고 불렀더니 냉큼 다가와 안기는 너. 너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본 나에게 전혀 두려움이 없는 너를 데리고 일단 출근을 하며 학원 원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여차저차해서 좀 늦겠다고. 그리곤 학원 근처의 동물병원으로 너를 데리고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 본 결과 수술이 필요했다. 일단 수술을 부탁하고 출근을 했다. 



동물병원 원장님께서도 너의 사정을 들으시고는 병원비를 저렴하게 해 주셨고, 수술을 끝낸 후에도 진료실 바로 곁에 두고 잘 지켜봐 주셨다.

 


너를 내 품에 안고 병원에 가고, 수술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측은지심일까? 아님 운명인걸까? 난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러나 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수술 후 뼈가 잘 붙을 때까지 절대 안정이 필요한 너. 아빠(남편)에게 말도 못해보고 이모(나의 동생)에게 임보를 부탁했다. 이미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 이모였지만 흔쾌히 너를 받아들여주었다.

 


콩이야, 너 생각나니? 이모집에서 단식 투쟁했던 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은 그리도 잘 먹던 사료를 이틀인가 사흘인가 안 먹어서 이모 속을 태웠었지. 그러다 사흘 째인가 이모가 출근하려다 다시 잠깐 들렀을 때 너 딱 걸렸었지. 사료 몰래 먹다가. 이모랑 네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단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지낸 후에 난 슬쩍 너를 집으로 데려왔단다. 동생이 구조한 강아지인데 동생네 여행가는 동안 며칠 돌봐줘야 한다면서. 우리집에 있는 사흘 동안 너는 배변 실수를 딱 두 번 했던 것 같다. 아마 넌 우리와 꼭 가족이 되고 싶었나보다. 

 


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단다. 엄마보다는 아빠가 더 힘들어했단다. 왜냐하면 너와 사흘을 함께 지낸 초롱이 언니가(우리의 첫 반려견)이 그 사이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거든. 아빠는 너를 신경 쓰느라고 초롱이 언니를 잘 못 챙겨서 아픈 것도 몰랐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도 너는 어차피 우리 가족이 될 수 밖에 없었나봐. 아마 네가 내 품에 안기던 그 순간에. 

 


너는 그렇게 우리의 가족이 되었구나. 너의 선택이 너무 고맙고, 아빠의 힘든 결정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너와 13년을 함께 행복했으니. 

“콩이야. 무지개 다리 건너에서 초롱이랑 동이랑 라니랑 행복하게 놀고 있으렴.”

 


가족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것은 무거운 짐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짐마저 기꺼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큰 기쁨도 함께 온다. 너의 선택, 나의 선택, 그리고 남편의 힘든 결정.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참 행복했다. 




***2008년 유월에 만나

2021년 시월에 무지개 다리 건너간 우리 콩이

이름이 콩이가 된 것은

수술후 기브스를 한 다리로 콩콩콩...잘도 뛰어다녀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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