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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14. 2023

다정도 병인양하여

때로는 낯선 나의 모습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 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子規(자규)야 아랴마는

多情(다정)도 病(병)인 냥하여 잠 못드러 하노라



봄밤에 달빛 비친 배꽃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풍경을 너무 좋아한다. 이조년의 이 시조는 정말 내 마음을 표현한 듯싶다. 지금도 포기하지 않은 꿈 중 하나가 배나무 과수원을 하는 것이다. 배가 탐나는 것이 아니라 배꽃 피는 봄밤에 달빛이 비치는 그 그림을 감상하고 싶어서이다. 배꽃 피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만 배 과수원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오늘 글의 제목을 이조년의 시조의 종장에서 따왔다.



나는 이 시조의 종장처럼 참 다정한,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도 잘하고, 바람에서, 햇살에서 계절의 변화만 느껴도 행복해한다. 날이 흐린 날은 차분해져서 좋고 날이 쨍한 날은 내 마음도 뽀송뽀송해져서 좋다. 작은 나눔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하고, 길냥이들만 봐도 가슴이 아리다.



이런 내가 가끔 참으로 냉정해질 때가 있다. 그런 나를 만날 때면 참 낯설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다.



 15년 전쯤. 첫 반려견 초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7살의 어린 나이였기에 우리가 제대로 케어를 못해서 그런가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7월의 마지막 날 초롱이를 보내려 멀리 김포의 반려동물 화장터를 찾아가던 그 새벽의 길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그렇게 며칠을 충분히 울고 슬퍼하며 초롱이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은 꽤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심장이 아프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문득 내가 참 낯설게 느껴졌다. 7년 동안 물고 빨고 했던 자식 같은 초롱이가 떠났는데, 난 왜 이렇게 담담할까? 왜 내 심장은 아프지 않은 걸까? 내가 초롱이를 남편만큼 사랑하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이 낯선 감정은 꽤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감정이었다.



4년 전의 그 일요일 저녁도 참 낯선 나를 만난 날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화장실 앞에 남편이 쓰러져있었다. 당황스러움과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그래도 난 참으로 침착했다. 처음엔 남편의 장난이 아닌가 생각했고, 다음으론 남편의 상태를 살폈다. 119를 불러야겠다는 내 게 말을 못 하면서도 싫다고 표현하는 남편의 마음을 읽고는 머리부터 빗겨주었다. 남편은 남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유달리 싫어하고 특히 머리 스타일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임을 알기에.



119 차량을 타고 가면서도 머릿속으로 내일의 일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을 했다. 내 차를 두고 왔으니 이동하려면 근처에 사는 언니에게 부탁해서 새벽에라도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막상 응급실에 들어갔더니 검사에 수납에 의료진의 질문에 정신이 없었다. 응급처치를 하고 입원실로 올라갔을 때도 남편 못지않게 나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마음이 분주해졌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간병인을 알아보고,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 간호사분들께 잠깐 부탁드리고 집에 가서 콩이(반려견)랑 도도(반려묘)를 챙겨주고 필요한 을 챙겨서 병원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이런 내가 참 낯설었다. 다정도 병인 나는 이런 상황이면 우왕좌왕하면서 슬퍼하고만 있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이런 내가 참 낯설었다.

 


이제는 이런 '낯선 나'도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어쩌면 주어진 감정에 참 충실한 사람인 게다. 슬플 땐 충분히 슬퍼하고, 아플 땐 충분히 아파하고, 행복할 때 충분히 행복하고……. 그러고 나면 또 새로운 감정을 느낄 준비가 되었기에 냉정한 듯 침착한 듯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낯선 나는 익숙한 나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이었다. 나만 잘 몰랐을 뿐.



 '낯선 나'는 나의 숨겨진 모습이 아니라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다. '다정도 병인 양~'하는 익숙한 나의 모습은 순간순간 내 삶을 충실하게 살도록 해 주는 나이며, '내가 이렇게 냉정했다고~'나는 낯선 나의 모습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나를 지탱해 주는 나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낯선 나'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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