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
이제 온몸으로 가을이 느껴진다. 손잡고 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나 함께 늙어가는 노부부는 한 여름날에도 두 손을 꼭 잡고 걷는데, 이리 날씨가 좋으니 얼마나 좋은 산책길일까 싶다.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든 앞만 보고 걷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전해진다.
사랑을 표현하는 행동에는 손잡는 것 이외에도 많지만, 손을 잡는다는 것은 절제된 사랑, 상대에 대한 신뢰, 든든함, 동행 등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나는 살아오면서 문제가 생기면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감사하게도 이제까지 그럭저럭 혼자서 나를 감당하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근래 엄마와 남편 때문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엄마의 치매는 사회복지시설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힘이 필요했고, 남편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내가 기꺼이 감당하리라 생각하지만 국가의 이런저런 복지 혜택이 있어 참 감사하다. 지인들로부터도 유형무형의 적잖은 도움도 받고 있다.
어느새 환자 보호자로서의 생활이 4년하고도 8개월이 되었다. 환자 본인인 남편의 고통이야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보호자의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특히, 처음의 그 당혹감과 정신없음이 참 힘들었다. 경제적인 부분도 물론 힘들었지만, 그 못지않게 정신건강 관리가 더 힘들었다. 아무나 붙잡고 내가 힘들다고 징징댈 수는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편한 사람이라고 해도 늘 이런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얼마 전에 형님(손윗동서)과 전화 통화하면서 나와 입장이 비슷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분은 남편이 루게릭병이라고 했다. 요양원에 모셔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지인분의 남편이 "나, 조금만 더 있다 버려라."라고 했다고 한다. 집에서 돌보다가 도저히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요양원에 모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지인분은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고는 매일 술로 보낸다고 한다.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술로 잊을 수밖에 없나 싶어서.
나는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그래서 책 쓰기를 시작했다. 장기 입원 환자의 보호자로서 나의 경험을 그들에게 들려주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이야기들을 책 속에 담고 싶다. 장애인 연금과 장애 연금의 차이, 신청하는 방법, 환자를 데리고 병원에 오갈 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재활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의 차이 등도 담으려 한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그래서 보호자 커뮤니티(카페, 밴드 등)를 만들고자 한다. 커뮤니티에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위안받고, 위안을 주고, 정보도 얻기를 바란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내가 한 사람의 손을 잡으면 둘이 되고, 둘이 다른 한 손에 또 한 사람을 잡으면 넷이 된다. 그렇게 나의 마음이 한 사람에게 넷에게 여덟에게……. 그렇게 손잡아 주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술 한잔으로 힘듦을 잊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선한 영향력. 이런 거창한 것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러면 그들도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겠지. 그렇게 아주 조금씩이라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는 작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손, 잡아 드릴게요. 우리 함께 손잡고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