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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06. 2023

삼거리에 서서 나에게 묻다.

남편이 쓰러진 날 새벽 거리에서

추위도 어둠도 가시지 않은 2월의 새벽. 나는 삼거리에 서 있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난 어떻게 해야하지? 모르겠다. 그냥 멍하다. 멍하게 서서 그저 기다리고 있다. 나를 데리러 와 줄 사람을.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가야할 그 미지의 것들을.    

 

삼거리. 그래.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삼거리이다. 횡단보도 건너 그곳에는 남편이 있다.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왼쪽 길은 나를 데리러 와 줄 사람이 올 길이고, 오른쪽 길은 이제까지 내가 다니던 익숙한 길. 그리고, 지금 잠시 다녀와야할 길이다. 


수업이 있는 일요일. 오후 2시쯤 쉬는 시간에 잠깐 남편과 통화를 했다. 

 “뭐 하고 있어? 점심은 먹었어.”

 “응. 뭐 대충 먹었다. 자기는?”

 “난 이동하면서 모처럼 햄버거 먹었어.”

 “그런데 기운이 좀 없네.”

 “어쩌냐? 일 끝내고 빨리 갈게.”


기운 없는 남편의 목소리에 난 걱정을 하면서도 ‘에구, 어제도 그렇게 술을 마시더니. 적당히 마시면 좀 좋아.’하고 생각했다. 수업을 끝내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는다. 나는 또 이상하게 집에 가고 싶지가 않다. 뭔가 귀찮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랄까? 난 이런 기분이 일요일이라 하루종일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챙겨줘야하는 것에 대한 귀찮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9시가 좀 못 되어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었는데 화장실 앞에 남편이 앉아있었다. ‘뭐지? 왜?’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뭐야. 장난치지마. 왜 그렇게 앉아 있는거야.”

대답이 없다. 남편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느꼈다.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이 흥건하게 적어 있었다. 남편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다. 깜짝 놀라 119에 전화를 하려니 또 그건 말린다.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울 남편. 특히나 머리스타일에 엄청 신경을 쓰는 남편은 그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습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난 남편의 머리를 빗겨주고서야 119에 전화를 걸었다.     


가방을 메고 들어온 모습 그대로 서서 119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어디에 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 함께 사는 콩이랑 도도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서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저 선 채로.     

일요일 밤. 119 응급 구조 차량을 타고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왜 그리도 생소한지. 10여 년을 매일 오가는 길인데 내게 그 길이 낯설기만 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낯설음이었을까? 


병원에 도착하니 정신이 없다. 의사의 질문에 몇 가지 답을 한 이후에는 검사, 검사, 검사…….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서너 시간을 그렇게 정신없이 있다가 새벽에서야 병실로 옮겼다. 남편을 병실로 옮긴 후에야 난 잠시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119 응급차량을 타고 병원에 왔으니 일단 차부터 가져와야겠구나. 그리고 집에 가서 도도랑 콩이도 챙겨줘야지. 아! 내일 일은 어떻게 하지?     


나는 지금 삼거리에 서 있다. 병원에는 남편이 누워있고, 고맙게도 이 새벽에 나를 데리러 와 주기로 한 언니가 올 길은 지금 나의 왼편에 있다. 나는 남편이 누워있는 그 낯선 길을 함께 가기 위해 잠시 익숙한 오른쪽 길을 다녀와야 한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저 삼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삼거리에 서서 나에게 묻는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 2019년 2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그 새벽의 이야기입니다. 

*콩이 : 당시 13살 된 반려견   /  도도 : 당시 10개월 된 반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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