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는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인연이었던지 처음 만나고 일 년 정도 지났을 때는 부부가 되어 나름 알콩달콩 달달한 신혼을 보내고 있었지.
당신은 참 자상한 사람이었어.
난 경상도에서 20여 년을 살아서인지 경상도 사람들의 그 무뚝뚝함이 정말 싫었는데...
충청도 사람인 당신은 결혼 전에도 헤어질 때면 집까지 바래다주고, 또 잘 들어갔냐고 꼭 전화해 주고(그땐, 핸드폰도 없었던 때였는데)
우리 여보 목소리가 엄청 멋있잖아.
어쩜,,,난 당신의 목소리에 반했잖아.
당신은 내가 좋아하던 노래를 다운받아서 밤새 반복해서 틀어주기도 했었지. 아마 그 노래를 수백 번쯤은 들었을 거야. 요즘이야 검색만 하면 바로 들을 수 있었지만, 그 시절엔 어디 그랬나.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뭐 그런 시대라 노래 한 곡 다운 받으려면 몇 분이 걸리고, 영화 한 편 다운 받으려면 밤새 걸리던 때었잖아. 전화가 걸려 오면 통신이 끊기고 말이야.
그래도 당신은 내가 말만 하면 밤잠 안 자고도 찾아주었었지. 난 말만 해놓고는 꿀잠을 잤어. 자다가 잠깐씩 깨어보면 당신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해달라는 걸 하고 있곤 했어.
여보야,
4년 전 당신이 쓰러지던 날은 정말 두려운 날이었어. 그때 우리 관계는 썩 좋지 않았었지. 그맘때쯤 난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당신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래서 더 두렵고 미안했어.
내가 당신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준 건 아닐까? 그래서 당신이 쓰러진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당신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 나 때문이 아닌 걸 알면서도 너무 미안했고, 또 때론 하루하루가 버겁기도 했지만, 당신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뭘까? 이런 마음은.
가끔 주변 사람들은 그런 말도 해.
차라리 이혼하면 이런저런 혜택이 많아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그래. 그럴지도 몰라. 그게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어. 그런데, 난 내가 감당하고 싶더라고. 당신의 외로움을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여보야,
요즘 당신을 생각하면 너무 속상해.
밥을 못 먹고 콧줄을 끼고 생활한 지가 어느덧 10개월 정도가 되었잖아. 핼쑥해지니 젊은 시절 얼굴이 나오면서 오히려 잘 생기긴 했지만, 먹는 즐거움을 못 느끼며 살아가는 당신을 생각하면 맘이 너무 아파.
그리고, 당신과 전화할 때 들려오는 주변의 소음도 날 속상하게 해.
당신이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나를 힘들게 할 때는 그저 잘 적응해 주기만을 바랐는데,
요즘은 소음 때문에 편히 잠들지 못할세라, 소음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할세라 걱정이 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렇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