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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21. 2023

청량리행 비둘기호

5년 만의 연락

5년 만인가?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동생 지호(가명)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 카톡으로 연락이 될지 모르겠네. 잘 지내냐? 오늘 문득 생각이 나네.”하고. 어쩌면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곧바로 답장이 왔다. 카톡을 주고받다 전화통화로 서로 안부를 물었다. 

 


지호는 내게 참 특별한 동생이다. 지호뿐만 아니라 내게는 참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내 나이 스무 살에 만난 사람들. 몇몇은 가끔이나마 연락을 하고 지내고, 몇몇은 건너 건너서 소식을 듣기도 하고, 또 몇몇은 서로의 기억 속에만 있기도 하다. 그래도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들이고, 항상 내 마음속 한켠에 그들이 있고, 그들이 잘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우리 동아리는 천주교 재단에서 후원하는 야간학교를 맡아서 운영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도 계시고, 교무과장 학생과장 교사들이 있는 하나의 작은 학교였다. 동아리 신입생들은 학교에 와서 급식 봉사를 하고, 2년 차부터는 교사생활을 한다. 큰 들통에 2~30개의 라면을 끓이는 급식 봉사를 할 때는 마냥 즐겁기만 했던 학교였는데, 막상 초등 사회 과목으로 교사 발령을 받고 수업을 시작하려니 얼마나 떨리던지. 40분 수업을 위해 며칠을 마음 졸이며 지냈다. 수업 준비도 열심히 했고, 연습도 몇 번이나 했는데,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수업을 들어가기 직전에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콤팩트를 몇 번이나 꺼내서 덧발랐다. 교탁에 섰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눈앞에는 거뭇거뭇한 점들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 지호는 그 첫 수업에 만난 나의 첫 제자들 여섯 명 중의 한 명이다. 

 


그 당시 중졸, 고졸 검정고시는 일 년에 두 번 시행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시험장이 있었기에 시험일이면 우리는 백 줄 가까운 김밥을 말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곤했다. 그런데 내가 담당하고 있는 반은 초졸 검정고시 대비반이었다. 초졸 검정고시는 일 년에 한 번만 시행되고, 시행지역이 전국 서너 곳 정도였다. 서울로 시험을 치러 가는 1박 2일 일정에 교무과장인 선배와 내가 인솔교사로 결정되었다. 청량리행 비둘기호 열차를 탔다. 모든 역마다 발길을 멈추는 비둘기호. 우리는 마치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어느 역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다른 열차와 교차 때문에 30여 분 쉬었다 간다고 한다. 우리는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 근처에서 놀았다. 그때 아이들이 나에게 선물해 준 크로바꽃 반지와 팔찌. 철없는 나보다 훨씬 삶의 무게가 무거운 그들이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정성 들여 만들어 준 꽃반지와 팔찌를 내 손에 묶어주는데 난 눈물이 나오려 해서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던 것 같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기분이 나를 설레고 들뜨게 했다. 아마 그 감정이 감동이었던가 보다. 

 


이제 40대 중반이 된 지호. 그동안은 어머니와 동생들 돌보느라 바빴던 지호가 작년부터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공부 때문에 직장도 학교 근처로 옮겼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4년제에 편입할 예정이라 한다. 대학원 과정까지는 꼭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이제야 오롯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녹녹지 않았던 지호의 삶. 그럼에도 늘 기꺼이 그 무게를 지고 살아온 우리 지호. 토요일에 지호를 만나기로 했다. 아무말 없이 한번 꼭 안아주어야겠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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