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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Oct 31. 2023

F층에 멈춘 엘리베이터

새벽 두시, 그 두려웠던 시간

나란 사람은 두려움이 많기도 하면서도 참 겁이 없는 사람이다. 순간순간 오싹할 때가 많지만 그것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귀찮아서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몇 번의 큰 사고를 겪고도 여전히 운전을 즐긴다. 겨울 눈길에 두어 번 사고를 내고도 눈만 내리면 강아지처럼 신이 난다. 혼자의 여행이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의 여행을 떠난다.




이런 내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이 하나 있다. 워커홀릭이라 할 정도로 일에 빠져 살던 30대의 그 어느 하루였다. 그 당시 분당 미금역 근처의 학원에서 부원장으로 일하고 있던 나는 항상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그날도 학원 일을 마치고 새벽 2시 쯤에 퇴근을 했다. 다른 날은 거의 안 실장과 함께였는데, 그날따라 나 혼자였다. 그 건물은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홀수 층 짝수 층으로 나누어 운행되었다.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주차장이 있는 지하 2층을 누르고는 지친 몸을 잠시 안전바에 기대어 서 있었다. 잠시 '멍~'한 상태로 쉼을 가졌다.



6층. 짝수 층이라 엘레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숫자만 바뀐다.



5층. 새벽 2시. 아무도 타지 않는다. 다시 숫자가 바뀐다.



F층. "띵~~~"소리가 나면서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그리곤, 문이 열린다. 아무도 타지 않는다. 문이 닫힌다.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무더운 여름에, 새벽 2시에, 6층도 아니고 2층도 아닌 F층(4층)에 멈춘 엘리베이터. 아무도 타지 않고 멈춰서 문이 열리고 닫힌 엘리베이터. 차라리 누가 타기라도 했다면 덜 무서웠을까? 아니 어쩜 올라탄 사람이 귀신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가방에서 차 열쇠를 꺼내서 손에 들었다. 가방도 움켜잡았다. 지하 2층까지 내려갈 때까지 아무도 타지 않았다. 누가 타도 무서웠으리라. 한층 한층 내려갈 때마다 무서움은 더 커졌다. 마치 내 옆이나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차 열쇠와 가방을 움켜잡은 채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누군가 CCTV로 봤다면 정지화면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드디어 지하 2층. 문이 열리는 순간 뛰었다. 차가 있는 곳까지. 왜 이리 먼 것일까? 몇 걸음 되지도 않는 내 차와의 거리가. 일명 삑삑이는 외제 차나 아주 고급 승용차에만 있던 시절이었다. 열쇠 구멍은 왜 이리도 잘 안 맞는지. 겨우 차 문을 열고 차에 앉자마자 일단 문을 잠갔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아마도 엘리베이터 고장이었으리라. 그런데, 새벽 2시, 나 홀로, F층. 이런 우연들이 겹치니 정말 그 존재를 믿지도 않는 귀신이라도 만난 듯 두려움에 떨게 되었으리라.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내가 참 무섭다. 사실 그때의 나는 학원에서의 체벌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나름 원칙을 정해서 체벌하는, 감정적으로 아이들을 야단치지는 않는 나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참 무섭다.  어쩌면 잘못된 생각을 하는 나에게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회초리는 물론 말로도 때리지 마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일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F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 사건은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엮여서 나를 반성하게 한다. 그래. 가장 무서운 것은 나 자신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상처 주지 않는지 늘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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