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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Nov 05. 2023

이런 여행도 좋겠다.

내가 한번쯤 해보고 싶은 상상 속의 여행

“어느 날은 태양이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본 적도 있어! 있잖아. 사람은 너무 슬플 때 해 지는 걸 보고 싶거든…….”

“태양이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본 날. 그렇게 슬펐던 거야?”

어린 왕자가 지구에서 만난 비행기 조종사와 나눈 대화이다. 

비행기 조종사의 물음에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린 왕자가 사는 조그마한 별. 

이곳에서는 의자를 조금 옆으로 옮기기만 해도 해지는 것을 계속 볼 수 있다. 

나는 슬프지는 않지만 태양이 지는 것을 보고 싶어서 오늘 오후 배편으로 이곳으로 들어왔다. 

이 곳도 많이 개발되어서 예쁜 펜션들도 많지만 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민박집을 찾았다. 

내가 예전에 와서 이틀을 머물렀던 민박집은 이미 펜션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그때 집주이었던 어르신은 소천하셨겠지. 

 



마을 안쪽으로 좀 들어간 곳에 자리한 민박집에 짐을 풀어놓고는 섬의 서쪽으로 갔다. 

이곳은 어린 왕자의 별보다는 좀 더 커서 의자를 옮길 일이 없으니 그저 모자 하나만 눌러쓰고서. 

너무 슬퍼서 해 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 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슬픔이 스멀스멀 기어온다. 

형체가 없는 슬픔이다. 

그저 난 날것의 감정을 느끼는 중이다. 

오늘은 이렇게 날것의 슬픔을 느끼고 내일 아침에는 섬의 동쪽으로 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날것의 환희를 느껴볼 생각이다. 




그리고 쿠크다스의 섬이라고 불리는 등대섬에 가서 핸드드립으로 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싶다. 

좀 번거롭긴 하겠지만 바구니 하나 챙겨서 가야겠다. 

소풍 바구니에 샌드위치 한 조각 만들어 넣고 드립세트도 챙겨가야지. 

때론 혼자인 듯 외로이, 때론 형님 곁에 붙어선 동생처럼 다정하게 느껴지는 등대섬은 물때를 잘 맞추면 걸어서 오갈 수 있다. 

내려가면 민박집 어르신께 물 때를 여쭤봐야겠다. 핸드폰 검색하면 바로 나오겠지만 그저 어르신께 말 한번 붙여보고 싶다. 

 



이곳은 통영에서 한 시간 30여분 거리에 있는 소매물도이다. 



 

요즘 나는 한달살이 중이다. 

지난 달에는 지리산 아래 마을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거의 매일 지리산을 올랐다. 

천왕봉에서의 일출은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나는 지리산을 오를 때마다 참으로 경건해짐을 느꼈다. 

등산화 끈을 한 번 더 고쳐 묶으며 기도하는 심정이 된다. 매일 올라도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지리산. 도시의 사람들조차 순박해지는 곳이다. 

 



소매물도에서 서른 번의 해넘이와 서른 번의 해돋이를 보고는 광주로 갈 생각이다. 

광주를 생각하면 늘 뭔가 빚진 기분이다. 

이번에 광주에 가서 그 빚진 기분의 실체가 무엇인지 좀 알아봐야겠다. 

 



나는 요즘 한달살이 중이다. 

어린왕자처럼 나를 찾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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