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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Jan 06. 2024

밥 대신 시(詩) 한 그릇

사랑하는 남편에게

남편은 원래 먹거리를 잘 챙기는 편이었다.

좋은 먹거리를 먹는다기보다 뭐든 잘 먹고 많이 먹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주 없이 술만 마시기도 한다던데

우리 여보야는 

술도 엄청 좋아하지만, 안주도 푸짐해야했고 술이 취하면 꼭 밥을 챙겨먹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혼 생활 내내 밥이 나를 참 힘들게 했다.




남편이 장기 입원 환자로 지내면서도 

나는 밥에 많은 신경을 썼다.

물론 밥이야 병원에서 챙겨주는 것이지만, 

적당한 간식거리를 챙기는 것은 내 몫.

당뇨에 고지혈증까지 있는 상태라 간식 하나 챙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늘 대화의 시작은 밥이었다.



만나도,

전화를 해도,

"여보, 밥 먹었어?"

"여보, 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 맛있었어?"

"자기야, 오늘 간식은 뭐 챙겨줄까?

이런 식의 대화가 주가 되었다.



병원 생활이 3년하고 9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더 이상 남편과 밥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근육의 기능이 점점 떨어져 음식을 삼키기가 힘들어져 그때부터 콧줄로 밥을 먹게 된 것이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사이 "밥"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여보, 밥 먹었어?


                                          by 김편선



두 눈 가득 봄햇살

말에도 향기가 묻어나던 그때

여보, 밥 먹었어? 하며

사랑밥을 차려냈다



가늘게 부릅뜬 눈

말에도 가시가 돋아나던 그때도

여보, 밥 먹었어? 하며

종종 얼음밥을 차려냈다



콧줄이 밥줄이 된 울 여보

더운밥이든 찬밥이든

차려내고 싶다



여보, 밥 먹었어?

여보, 밥 먹자


* 시집 [향기로운 일상의 초대] 중에서 





이 시는 그 마음을 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 남편에게 얼음밥을 차려냈던가.

이제는 그렇게 얼음밥마저 차려줄 수 없는 상황이 되고보니

더운밥이든 찬밥이든 차려주고 싶었다.

더운밥이든 찬밥이든 먹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우리의 대화에서 "밥"을 빼고 나니 할 말이 없어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밥"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나?

남편과 하루에 두세 번 정도 통화를 하는데, 정말 나는 한동안 할말을 잃어버렸다.








시 읽어주는 여자


by 김편선



남편과의 전화통화는

여보, 밥 먹었어?로 시작했다



콧줄이 밥줄이 되고

여자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남편과 그 여자

그 사이

많고 많았던 밥



꽤 오랫동안

그 여자

밥을 잃고는

할 말조차 잃은 듯 했다



남편과의 전화통화는

이제 늘

한 편의 시로 시작한다



콧줄이 밥줄이 되었지만

여자는 할말을 되찾았다



남편과 그 여자

그 사이

많고 많았던 밥처럼

따뜻한 시 한 편이 향긋하다






요즘은 남편과 전화 통화를 할 때 시 한 편씩 읽어주고 있다.

때로는 좋은 글귀를 읽어줄 때도 있다. 

시의 향기가 밥내음처럼 구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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