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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Jan 07. 2024

오늘은 엄마 육아하는 날

돌봄이 아닌 육아

일요일.

달달한 쉼이 필요한 시간이지만, 두어시간을 달려 친정에 왔다.

오늘은 내가 엄마 육아를 하는 날이다.




나의 엄마는 치매이시다.

한 5년 정도 된 것 같다.

처음에는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정도였는데,

사고를 한 번 겪은 후에 급격이 안 좋아지셨다.

체력적인 부분도 인지적인 부분도.




난 부모님에 대해 참으로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별로 받은 것이 없기에 나도 뭐 그리 애달아하면서 챙겨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한마디로 받은 게 없기에 줄 것도 없다는 생각.

얼마나 오만하고 못돼먹은 생각인가?

그 시절에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대학 공부까지 시켰으면 감사해야할텐데 난 다른 형제들과 비교해 덜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곰살맞게 챙겨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섭섭함이리라.

오빠는 결혼할 때 집까지 사줬는데

내가 결혼할 때는 예단으로 챙겨준 몇백을 제외하고는 이불 한 채, 그릇 하나 챙겨주시지 않았으니까.

아니, 꼭 사주시지 않아도 함께 구경하러 다니고 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니들이나 동생 결혼할 때는 뭔가 사주신 것 같은데.

그 당시는 섭섭하다 말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 깊은 곳에는 그 마음이 있었나보다.

부모님에게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나보다.




이런 나의 생각이 바뀐 것은 엄마가 치매를 앓으시면서부터이다.

초기 치매이실 때는 그저 귀찮았다.

그러다 엄마의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격주로 친정에 가기 시작했다.

다른 형제들과 관계없이 나와의 약속, 나만의 루틴이었다.

주말의 반은 나를 위해, 주말의 반은 엄마를 위해 쓰기로 했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왜?

생각을 해 봤다. 왜 행복한지.




답은 글의 제목에 있다.

나는 엄마 육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돌봄이 아니라.




"돌봄"과 "육아"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왜 엄마 돌봄이라고 하지 않고 엄마 육아라고 할까?




"돌봄"은 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돌봄을 받는 사람은 그저 받기만 한다는 느낌이다.

돌보는 사람의 전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같다.




그런데 "육아"는 어떤가?

육아도 힘든 것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울 때를 생각해보라.

이유없이 칭얼대는 아기

너무 힘들어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가도 잠들고 나면 그 천사같은 모습에 행복해지지 않는가

떼를 쓸 때는 한 대 쥐어박고 싶다가도 "엄마 사랑해" 한 마디에 사르르 녹아버리지 않는가




우리 엄마.

큰 살림에 늘 힘들어해서 자식들에게마저 살갑지 못했던 우리 엄마.

난 그저 우리 엄마는 그런줄만 알았다.




그런데 엄마와 지내면서 너무나 곱게 웃으시는 엄마를 본다.

고맙다는 표현도 참 잘 하고,

내 등도 토닥토닥 자주 해주시는,

이런 엄마를 알게 되었다.




사실 힘들다.

그런데 엄마가 웃으주면 참 행복하다.

우리 엄마는 나만 보면 웃으신다.

너무나 해맑게.




그래서 난.

오늘도 엄마 육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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