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내 내린 눈이 제법 쌓였다.
아침 스터디와 북클럽을 끝내고 귀찮은 마음이 생기기 전에 바로 문을 열고 나섰다.
겨울 냄새.
시원하니 참 좋다.
겨울 냄새?
오늘날의 겨울 냄새는 찬 바람 냄새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겨울 냄새는 참 다양하다.
가막정지에서 소여물을 끓이기 시작하면 타닥타닥 짚단이 타면서 나는 볏짚냄새와 불냄새
가마솔이 눈물을 죽죽 흘리기도 전부터 집 전체에 구수하게 퍼져나가던 소여물냄새
안방정지에서 누룽지 만들어지는 냄새
오늘은 청국장, 오늘은 김치찌개, 오늘은 동태찌개
밥상에 올라오기 전부터 알 수 있는 저녁 국이며 찌개 냄새
사랑방 시렁에 매달려 세월을 삭히며 익어가는 메주 냄새
사랑방 아랫목 장판이 발갛게 타들어가는 냄새
콩나물 시루 또록또록 흘러내리는 물을 참 잘 먹고 비릿하게 자라는 냄새
겨울이면 사랑방으로 들어와 함께 잠을 자던 고양이의 까칠하고도 포근한 냄새
얼며 녹으며 말라가는 겨울 빨래 냄새
추운 겨울이며 삐꺼덕 문짝이 잘 맞지 않는 방문을 살짝 열고 태우는 할머니의 담배 냄새
지금은 담배 냄새가 참 역겨운데,
곰방대에 담아 피우던 할머니의 담배는 참 구수했다.
이름이 풍년초 담배였지. 아마.
홀로 되신 할머니, 엄마아버지, 결혼 안 한 막내 고모에
우리 육남매까지
대식구가 모여살던 우리 집은 참으로 복잡복잡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시집 간 막내 고모와의 이별은 내가 처음 맞이한 이별이었다.
신행 다녀와 우리 집에 하룻밤 머물고 떠나던 막내고모의 옷자락 냄새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우리 막내 고모.
이렇게 대식구가 모여 살았던 덕분에
내 이런 시절은 엄마아버지가 머무시는 안방보다 할머니와 머물던 사랑방에 대한 추억이 더 많다.
냄새로 기억되는 추억.
15~6년 전에 시골집을 새로 지으며 사랑방 구들을 그대로 살렸다.
집의 구조는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 아궁이와 구들만은 남아서
지금은 엄마와 아버지가 그 방에서 지내신다.
겨울이면 보일러 기름값도 아낄 겸 아궁이에 불을 때며 겨울을 나신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난
지금도 여전히 장판이 발갛게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