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 쓰기 만들어 가공하기

by 이백구십일

지난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늘 날 위해 그를 쓰는 사람이었다는 거.

그게 지금 시점에 공개가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것과 다른 것들을 여러 가지 깨달은 후로 웹소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놨지만.

또 다른 화두가 나를 찾아왔다.

에세이 쓰는 건 왜 이렇게 편하고 쉽고.

소설을 쓰는 건 왜 그렇게 힘들고 버겁다고 느껴지는가.


어쩌면 거의 트라우마처럼 남은 웹소설 시도로 잔재가 남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다 보니 결정적인 차이가 느껴졌다.


내 에세이 대부분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걸 꺼내서 쓰거나.

그렇게 꺼내진 걸 다듬다 나온 결과물이 적힌다.

이미 내가 재료를 가졌고, 그걸 가끔 조리 정도는 하지만 대부분 조미료도 없이 꺼내놓는다.


소설은 재료가 내 안에 있는 경우도 있고.

다른 곳에서 올 때도 있었다.

이건 에세이랑 조금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겠으나,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

바로 그 재료를 다듬고 깎고 가공해서 요리해야 한다는 거다.

그 과정에서 조미료도 넣어야 하고.

추가로 필요해지는 다른 재료들이 많아졌다.


여기까지면 그 과정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편해질 수 있을 텐데.

결정적으로 소설은 없는 재료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걸 쥐어짜고 짜맞추는 과정이 괴롭고 버거운 포인트인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를 시식했을 때 내가 원하는 맛이 나오거나 기대 이상이라면 너무 기쁘고 즐거웠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진 않았다.


들이는 품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기대감도 커지기 마련인데.

내 경우 에세이에 비해 소설이 더 큰 보람과 기쁨으로 돌아왔던 적은 드물었다.

누군가에게는 새 재료를 찾고 만드는 일.

여러 레시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일이 그저 기쁨일 수 있겠으나.

나에겐 꽤 많은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이걸 이제야 안 게 우스울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나한테 더 맞는 게 뭔지 알아보려면 둘 다 경험해야 하니.

나 말고 누군가 알려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알고 나니 조금 허탈했다.


근데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에세이 쓰는 거 편하고 쉬워서 좋다.

그럼 에세이만 계속 쭉 쓰면 될 텐데.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으로 점철된 소설 쓰는 것에 왜 이렇게 눈길이 갈까?


랜덤 조합으로 운 좋게 얻었던 맛있는 요리 때문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소설이 이제 좀 두려움의 영역에 가까운 편이라.

에세이로 즐거운 지금 이 마음과 의욕을 망칠까 봐 가까이하지 않았다.

언젠가 저 건너로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조금 더 깨닫고 안 게 있는 만큼 전과 같은 방식을 쓸 생각은 아니다.

조금 더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냈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조금 더 알게 됐으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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