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의 시작

by 이백구십일

내가 처음 죽고 싶었던 건 중학생 때의 일이다.

옛 기억이 흐릿한데, 기억나는 순간은 있다.


불 꺼진 부엌에 우두커니 서서 서랍 안의 칼을 아주 오랫동안 쳐다봤다.

어느 날은 가만히 손목 위에 올려보기도 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아주 엉망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때때로 비슷한 시도를 하긴 했지만, 선을 넘진 않았다.


우울증에 대해 남들과 다른 기준과 시각을 가진 나에게도, 이때의 나는 우울증이었다.

사춘기와 함께 찾아왔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내 아주 가까운 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도 우울증이냐, 하면 조금 다른 의견이지만 그건 나중에 더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이때의 나는 왜 죽고 싶었을까?

그때도 몰랐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저 사춘기라 그랬나?

남들도 다 할법한 그런 생각만 들었다.


어쩌면 너무 달라진 환경이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년기의 나는 정말 깡촌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까지도 그랬다.

아파트는 작은 빌라 같은 곳 하나만 있었고.

논밭이 아주 많았다.


사는 동네 마을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학교의 모두와 환경이 비슷했고, 스무 명 남짓이었지만 두루두루 친했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소위 시내라 불리는 곳으로 가게 됐고.

초등학교 때처럼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몇몇 친구는 생겼지만, 초등학생 때처럼 모두 함께 자라와 익숙하고 편한 사람은 없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으로 가득한 곳에서 나는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학교가 끝나면 늘 동네 친구들과 놀던 일도 사라졌다.

학교를 오가기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공허함을 많이 느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는데, 뭔가는 해야 시간이 가니 게임을 주로 했던 것 같다.

가끔은 책을 읽었다.


뭔가 계속 힘들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왜 힘든지는 몰랐다.

같은 날이 반복되며 증상은 심해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게임을 계속했다.

학교에 가기도 싫었지만, 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억지로 등교했다.

그러면서 상태는 더 나빠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도 오컬트를 좋아했다.

그러니까 미신 같은 거 말이다.

그래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타로 카페에 방문했다.


뭘 묻고 어떤 답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구나.

힘들었겠다.

그런 말을 들었던 건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아, 이 버겁고 힘든 느낌이 스트레스받아서구나.

정체 모를 괴로움에 이름이 붙여지자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주말이었나.


엄마와 함께 앉아 밥을 먹다가 그런 말을 했다.

엄마, 나 스트레스 많이 받나 봐.

당시에는 그냥 내가 깨달은 걸 생각 없이 말한 거였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말 아니었을까?

나 힘들어, 도와줘.


스트레스라는 말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스트레스받을 게 뭐가 있어?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맞지도 않는데 떠든 사람 취급이었다.

나는 조금 충격받았던 것 같다.


내가 느낀 이게 스트레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건가?

그럼 난 대체 왜 힘든 거지?

스트레스는 대체 뭐야?

얼마나 더 무섭고 아픈 거야?


그 후로 다시는 스트레스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이때도 적은 사람과 깊게 친해지는 걸 선호했다.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같이 밥 먹을 정도는 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단짝 친구도 생겼다.

얼마 안 가 다른 나라로 유학 가 버렸지만.

그래도 연락은 계속 이어가서 지금도 절친이긴 하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놀러 다녔다.

그 외의 시간엔 게임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봤다.

그리고 그사이 사이 아주 많은 시간에 끝을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는지는 몰랐다.

그냥 습관처럼 그렇게 됐다.


이유도 모르고 힘들고 지치고 살고 싶지 않은 것.

그 상태와 감정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고.

컨트롤할 수 없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이다.


이때 누군가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알고 치료할 수 있게 해 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지금보다 더 우울증이라는 것에 대해 무지하고 터부시했던 그때.

그런 일이 있을 순 없겠지만, 돌아보며 되새기다 보니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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