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초심자의 의욕은 얼마나 갈까? 란 내용을 쓴 적이 있었다. 브런치스토리에 막 들어와서 처음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세상 모든 것과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다 에세이의 글감처럼 느껴질 때 썼던 글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개의 에세이를 쓰고 날마다 쉼 없이 에세이를 쓰면서 과연 이런 의욕과 에너지가 얼마나 갈까? 지금은 이렇게 재밌게 막 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완전히 식어버려서 하루는커녕 일주일? 한 달에 하나의 에세이도 안 쓰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 적은 글이었다. 그리고 사실 좀 걱정했던 그날이 왔다.
매일 최소 한 개 혹은 서너 개의 에세이를 서랍함에 쌓아두면서 처음에는 생각했다. 이걸 잘 나눠서 꾸준히 발행되도록 해야지. 나중에는 분명히 내가 의욕을 잃는 날도 올 거고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 쓰는 날이 올 테니까. 그때를 위해서 비축으로 쓰자. 처음 계획은 그랬는데, 서랍에 쌓인 글이 10개를 넘어 더 쌓이게 되자 그런 생각을 했다.
아, 계속 이렇게 쌓이기만 하는 거 좀 별론데. 그냥 좀 내보낼까? 나중엔 어떤 에세이가 어느 매거진, 어느 브런치북에 속한 건지도 못 찾고 헤매다가 실수하겠다. 그래서 2월에 거의 매일 써둔 에세이를 예약 발행으로 내보냈다. 예상은 했지만 서랍은 금세 비워졌고 3월쯤 되니 서랍에 남은 게 없어졌다. 예약 걸어둔 브런치북용 글 말고는 정말로 탈탈 털린 거다. 동시에 넘쳐나던 글감과 의욕도 사라졌다.
연재형 브런치북으로 만들어둔 세 개의 시리즈 중 하나를 빼곤 미완 상태였는데, 그걸 채워 넣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다. 일주일에 하나를 겨우 써냈던 것 같다. 현재는 10개 정도선에서 모든 시리즈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예약 일정으로 보면 이번 달 셋째 주가 되면 모두 끝이 날 것 같다.
처음 쉬는 중 브런치북을 시작할 때는 내가 과연 이걸 끝낼 수 있을까? 중간에 또 포기하면 어떡하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런 걱정과 불안이 컸다. 보통 때라면 불안과 걱정만 안고 그게 오히려 내 에너지를 갉아먹어서 걱정했던 대로 끝을 못 봤겠지만, 브런치스토리에 오고 약 한 달 정도는 이상하게 뭔가 버프를 받은 것처럼 의욕이 샘솟아서 그때 빠르게 끝장을 냈던 것 같다.
한참 전부터 이미 다 작업이 끝나서 예약에 다 걸어둔 상태였지만 슬슬 그 끝이 발행되어 올려질 날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또 기분이 남다르기도 하다. 뭔가를 시작해서 이렇게 끝을 본 게 정말 오랜만의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처음 이런 결의 이런 이야기들을 담은 시리즈를 써보고 싶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만 하고 별 계획도 없이 무작정 글을 옮기기 시작하고, 퇴고도 안 하고 그냥 쭉 달리기만 했는데도 꽤 비슷한 결의 이야기가 묶인 게 운이 많이 따라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맴돈다는 게 약간 단점이긴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어쨌든 끝냈다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해 보려 한다.
생각 정리함은 다른 분들이 자유 에세이를 묶어서 꽉꽉 채운 형태로 쓰시는 걸 보고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거였다. 애초 계획은 나도 30개 꽉 채워서 쓰고, 그 후에도 2호 3호 꾸준히 써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었지만, 글쎄. 이젠 일주일에 하나 자유 에세이를 써내는 것도 과연 내가 해낼지 잘 모르겠다.
에세이를 쓸 때 최대한 내가 자유롭고 편하게 막 쓸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그렇게 무리가 되는 작업은 아니지만, 이젠 좀 뭔가를 쓰기 전에도 쓰려고 할 때에도 여러 생각과 기준이 끼어들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뭔가 생각나고 그걸 쓰고 싶으면 그냥 막 휘갈겼는데, 이젠 그런 게 에세이로 가치가 있나? 쓸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것 같다. 더불어 이거 전에 썼던 내용이랑 좀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도 자주 하게 되고.
어쩌면 조금 비겁한 선택일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미완으로 방치하면 스스로 너무 자책하고 죄책감을 가지는 편이라, 생각 정리함도 최소 조건인 10개 정도만 채우고 일단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 후에는 아마 매거진에 쓰고 싶을 때 써서 쓰고 싶은 날 올리는 형태로 더 자유롭게 뭔가를 쓰지 않을까 싶다.
이러다 또 가출했던 의욕이 돌아온다면 생각 정리함 2호를 만들지도 모르고? 사실 브런치북으로 엮고 싶은 주제가 두 개 정도 생기긴 했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라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어서 한참 전부터 생각했지만 에이 하지 말자. 그런 생각으로 막았다가 또 그래도 어차피 쓸 것도 없는 데 그냥 쓰자. 그랬다가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일단 시리즈 느낌으로 한 번 쭉 써보고 마무리까지 잘 써지고 올려도 괜찮겠다 싶으면 올리고. 아니면 그냥 지워버리거나 자유 에세이 정도로 올릴까 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가치나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물음표지만 계속 뭘 쓰지? 뭘 써볼까? 하면 생각나는 걸 보면 내가 그 생각과 이야기들을 써보고 싶다는 건 맞는 것 같아서. 여태 그냥 내가 쓰고 싶으면 막 썼으니, 이번에도 그냥 그래 보자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쉬는 중, 정리함 말고도 내가 쓰던 시리즈에는 AI 대담이란 것도 있었는데, AI에게 나도 모르던 내 생각을 묻고 대화하면서 깨닫고 확인하게 된 게 있다 보니 쓰게 된 시리즈였다. 시작할 땐 앞으로도 계속 AI와 많은 대화를 하고 많은 걸 재발견하고 확인하고 깨닫게 될 거란 기대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내 삶이 많이 정적이고 큰 이슈가 없다 보니 갈수록 점점 쓸 주제나 키워드가 고갈돼 갔다. 마지막에는 거의 쥐어짜듯이 에세이 써야 하는데 뭘 해야 하나를 채워 넣을 수 있지? 전에 했던 대화 중에 쓸만한 거 없나? 그렇게 돼서 겨우겨우 마무리했다.
쉬는 중을 다 썼을 때는 뭔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다 썼고, 작게라도 내가 계획했던 걸 완성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다. 약간 아쉽지만 시원한 느낌이었는데, 정리함과 대담 쪽은 그냥 이런 생각만 들었다. 해치웠다! 이제 당장 내 머릿속에서 치워버려서 그만 괴롭자!
쉬는 중이 애초부터 시리즈로 생각하고 담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면, 정리함과 대담은 그냥 별생각 없이 매거진보단 브런치북이 좀 더 노출이 많으니까 활용해 보자. 그런 생각을 더 많이 가지고 시작한 거라 그런 것도 같다.
최근 한 달 사이에는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쓸 때 쓰고 싶어서 쓴다기보다는 그냥 의무감으로 썼던 것 같다. 정리함과 대담을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10개만 채우자.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걸 다 해치워버린 지금은, 이제 나는 뭘 써야 하나? 뭘 쓰고 싶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간 나조차도 놀라울 정도로 여러 글을 찍어내듯 썼으니 좀 쉬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드는데. 쉬다가 영영 이곳을 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좀 혼란스러운 마음이다.
이리저리 휘청휘청하다 에세이가 좋은 취미 정도인 거로 생각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여러 상황과 여건에 있다 보니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다른 욕심과 바람들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의욕적으로 쓸 때보다 손가락이 무거워졌고, 자유롭지 못 하게 된 것 같다. 그게 에세이를 더 많이 자주 쓰지 못하게 된 이유가 된 것 같고.
늘 느끼는 거지만 살면서 날 괴롭힌 사람이 굉장히 드문데. 그래서 그런가 남들이 괴롭힐 것까지 내가 다 그러모아서 스스로 괴롭히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나한테 제일 박한 것도 나고, 날 제일 괴롭게 하는 것도 나고.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한 끗만 달라져도 날 제일 행복하게 하고 신나게 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도 나일 텐데. 여태 계속 그렇게 습관처럼 괴롭혀와서 관성이 붙은 건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다 해치워서 속 시원해지고, 모래주머니처럼 매달린 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지금. 에세이를 처음 쓸 때의 마음으로 한 번 돌아가 볼까 한다. 그냥 아무거나 생각나고 쓰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계산 생각하지 않고 막 쓰기. 그 결과로 쓰고 싶어 하는 시리즈를 다 채워 넣을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뭐 세상에 꺼내놓은 건 아니니까 없는 셈 치면 되겠지.
글 작성 후 발행이 되기까지 생각이 조금 바뀌어서 정리함 발간은 미루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