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나?

by 이백구십일

전에 그런 글을 봤다. 한 대학교의 이야기였는데, 이제 AI를 써서 과제를 하는 걸 더는 막을 수 없고. 막는다고 막히지도 않으니 허용하겠다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잘 정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AI 써서 만든 결과물을 사람이 조금만 손봐도 AI로 한 건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우니까. 그걸 적발하겠다고 괜히 시간을 쓰고, AI 안 썼는데 썼다고 점수를 안 줬네. 쟤 썼는데 왜 점수 안 깎지? 같은 소리를 듣는 거 서로에게 너무 소모적이니까.


무엇보다 AI 발전이 정말 무서울 정도다. 이제는 AI를 안 쓰고는 쓰는 사람의 생산성이나 속도, 품질을 따라가기가 무척 어려운 지경이 됐다. 지금도 그럴 텐데, 앞으로는 더 심해지지 않을까? 그러니 AI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해서 AI 활용력을 높이는 게 다가올 시대에는 엄청난 경쟁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AI가 나오기 전 세대에서는 구글링이 중요했다. 똑같은 걸 찾기 위해 검색을 하는데도 이상하게 더 좋은 정보, 더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 이상하지. 검색창에 비슷한 키워드로 검색하는 건 같은데. 왜 더 잘 검색하고 더 좋게 활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때는 왜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고, 나는 같은 걸 찾는데도 이렇게 변변찮은 내용만 나올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답은 찾지 못했지만, 아마 검색을 얼마나 더 많이 해봤고. 얼마나 깊이 많이 다양한 곳에서 찾느냐에 따라 달라진 게 아닐까 싶다.


AI를 쓰는 것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삐걱거리는 부분이 많지만, 지금부터 AI와 더 친해지고 더 많이 써보고 다뤄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AI를 활용하는 능력이 더 좋겠지. AI가 빠질 수 없는 세상이 되면 그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유능하고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서 AI를 막지 않고 명시적으로 쓰도록 장려하는 게 시대에 맞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봤던 글에 그런 의견을 남기니 반박이 달렸다. AI를 쓰는 사람들의 사고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들먹이면서, 한창 뇌를 쓰면서 더 사고력을 확장하고 논리력을 키워야 할 때. AI에 그 모든 걸 맡겨버리면 지금보다 더 지능이 떨어진 애들이 수두룩해질 거라고. 사회에 나와서는 모르겠지만 대학생 때까지는 AI를 금지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처음 반박을 봤을 때는 그런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초등학생. 중학생도 아니고. 대학생쯤 됐으면 이미 사고력이나 논리력이 어느 정도는 키워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가장 험난한 문턱이 될 졸업 후 취업할 때. AI를 잘 안 다뤄본 사람과 많이 다뤄본 사람의 경쟁력을 생각하게 됐다. 아직은 기업에 AI가 정말 컴퓨터처럼 쓰이는 수준은 아니라서 애매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후자의 경쟁력이 압도적일 것 같았다.


지금으로 보면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정도. 따로 반박에 더 반박은 달지 않았다. 어차피 말 안 통할 것 같고. 그 사람이 그 사람대로 나는 나대로 생각하면 되니까. 굳이 서로 생각이 다른데 설득할 필요는 없지. 그리고 한참이 흘러 만학도 지씨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특정 주제를 두고 그것을 잘 아는 분께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첫 회에 궤도라는 유튜버분이 출연했고. 주제는 AI였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중에서도 위에 적었던 일화가 갑자기 떠오르게 된 이야기가 있었다.


AI를 너무 쓰면 멍청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냐.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원시시대 이야기가 나왔다. 그 시대에는 창을 잘 던져서 사냥을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을 거다.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한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사냥 능력이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능력이냐? 하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거다. 사람의 생각하는 능력. 사고력, 논리력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니. 굉장히 급진적이고 멍해지는 답변이었지만,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도 AI를 쓰면서 뭔가 얘한테 내 뇌를 외주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고. 나 대신 생각하게 시키고 답변받으면서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구나. 얘가 내 뇌를 대신하는 것 같은데, 그럼 난 뭐지?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잠시 AI를 멀리했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과도기라 AI가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고 실수나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말 더 고도로 발전해서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정확해졌다고 할 때. 그런 도구를 잘 써먹는 게 유능한 경쟁력이 되지 않나. 효율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의가 됐다. 근데 이제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내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존재하지 않나? 괴리감과 거부감이 엄청 들었다.


처음 컴퓨터와 인터넷 등. 디지털이 대두될 때의 사람들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그래도 그때는 여전히 생각하는 것 자체는 사람의 전유물이었을 텐데. 생각을 대신 해주는 기계가 생겨나고 그게 당연시됐을 때. 나는 무엇으로 내가 쓸모 있고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야 할까?


물론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다고 쓸모 있고 존재 가치가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람이 생각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근데 그 당연한 걸 뺏겼을 때의 상실감을 대체할 뭔가가 생길까?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라 잘 모르겠다. 언젠간 알 수 있게 될까?


누군가는 그러니 AI가 더 발전해선 안 되고. 절대 쓰지 말고. 멀리 해야 한다. 지금이 최고 수준일 뿐 더는 획기적인 발전은 없을 거다. 그러기도 하지만. 이미 투입된 자본과 흐름을 보면 거부하고 부정한다고 바뀔 흐름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차피 못 막을 걸 막아야 한다고 분노하고 억울해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어떤 쓸모와 어떤 즐거움을 찾을까. 그런 것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토요일 연재
이전 13화나는 가끔 예지몽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