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어.

by 술술

두 번째 글쓰기 수업은 ‘합평’이었다. 서로의 글과 의견을 나눈다. 나는 지금까지 주로 누군가의 글을 읽는 쪽이었기에, 내 글이 읽히는 것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마치 넘어졌을 때,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혼잣말을 하는 기분이랄까. 길을 가다 넘어지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놀라서 쳐다본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 넘어진 당사자보다 더 놀라는 사람,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는 사람. 사람마다 반응은 다양하지만, 악의는 없다. (웃는 사람도 웃고 나서 미안한 마음이 들 확률이 높다.) 합평도 비슷하다. 같은 글을 읽어도 사람마다 반응은 다르다. 처음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는’ 그 자체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이 시간이 제법 기다려진다. 언제 또 내 글을 읽어주고, 의견을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문제는 ‘읽을거리’ ‘나눌만한 거리’를 써야 한다는 부담이다. 아니, 쓰고 싶다는 욕심이다. 만약, 내가 우연히 본 누군가 상황이 제법 인상적이었다면, 나는 지인들에게 얘기할 것이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하고, SNS에도 올리고, 카톡도 보내고. 그런데,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날까? 그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화제성도 있는 이야기가 마침 나에게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난 무얼 써야 할까? 무얼 쓸 수 있을까?

토요일까지 한 편의 글을 더 써야 한다. 이번에 쓴 두 편의 글 중에서 1편을 골라, 비슷한 주제나 흐름의 글을 쓰는 것이다. 작가님은 새로운 주제를 써도 좋지만, 이왕이면 기존의 글에서 고르면 좋겠다고 했다. 과제를 듣는 순간부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1, 2번 중에 뭘 고르지?’가 아니라 ‘뭘 쓰지?’라는 애초의 고민으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작가님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했었다. 작가님은 그럼 지금의 마음을 적어보는 건 어떠냐고 하셨다. 지금의 내 마음이라.

며칠째, 노트북 화면은 하얗게 텅 비어있는데 머릿속은 새까맣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한 글로 가득해서 불편하다. 음식이면 소화제라도 먹으면 좋겠는데, 글이 소화가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비워보자. 내 안에 가득한 것을 다 꺼내면, 그게 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가벼워지지 않을까? 마음을 글로 비워내자.

지금 내 마음은 이렇다.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런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불현듯, ‘차라리 누가 뭘 쓰라고 정해주면 좋겠다.’ 싶다. 아!! 아!!! 아!!! 맞아!! 나는 원래 ‘결정’을 잘 못 한다. 흔히, 말하는 ‘아무거나’ 부류의 사람이다. 뭐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아무거나, 난 다 괜찮으니까 너 먹고 싶은 거 먹자.’라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 내가 할 일을 정해주는 게 속 편하다. 심지어 시키는 일은 꽤 잘한다. 착한 사람, 배려하는 사람인 듯 보이지만, 사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에 결정을 못 하는 것뿐이다. 순간, 노래 가사가 맴돈다. ‘내 안에 있어.’ 무슨 노래인지 한참 생각해보니 가수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노래다.

‘울고 있는 나의 모습 바보 같은 나의 모습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 싫어 태양이 싫어

누군가 날 알아보며 왜 우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 수가 없는 게 너무 싫었어

...

너를 너무 잊고 싶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애를 써도 넌 내 안에 있어.’

누군가 나에게 왜 쓰고 싶은지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나를 피할 수 없다.

길에서 넘어진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내가 넘어지고 사람들은 쳐다본다. 그리고 다양한 반응을 한다. 하지만 곧, 자기 가던 길을 간다. 얼마나 아픈지, 쪽팔린 지, 스타킹은 나갔는지, 흉터가 남진 않을지, 근처에 약국은 있는지. 나보다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을까? 약국을 갈 사람도 나고, 내 안의 답을 알아내고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도 나다. 전에는 나를 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기 때문에 나를 알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방법을 몰라 헤맸다. 조금씩 알게 됐을 땐, 신나기도 했지만 어쩐지 겁이 났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 불쑥불쑥 나오면 도망치고 싶었다. 별로인 모습, 찌질한 모습, 결정을 못 하는 모습…. 나는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또 적을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내 글이 얼마나 별로로 느껴지는지 모른다.

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주절주절. 그래도 어쩌겠는가. ‘읽을만한 거리’는 아닐지 몰라도 지금 나의 가장 솔직한 마음인 것을. 이 어수선한 글을 아니, 내 마음을 읽어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부끄럽다.

이것부터 마주하자. 여기, 이 낯부끄러운 주절거림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답은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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